“사람에 대한 투자 늘려야 코로나 이후 한국에 기회 온다”[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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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2일 “탈세계화와 무역마찰로 수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수출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으로 튼튼한 내수시장을 키워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22일 “탈세계화와 무역마찰로 수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수출과 함께 소득주도성장으로 튼튼한 내수시장을 키워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문재인 정부 들어 소득주도성장만큼 논란을 빚은 정책도 없다.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이 정책이 3년을 맞았다. ‘소주성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고, 세부 사항을 구체화하라’는 대통령 지시로 2018년 만들어진 소주성특별위원회는 2년이 됐다. 소주성의 성과와 문제점,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정책의 설계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다음 달로 2년 임기가 끝나는 홍장표 위원장을 22일 오후 서울 종로의 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소득주도성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 중심 경제다. 그동안은 기업이 잘돼야 경제가 성장하고 나라가 잘된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계가 잘돼야 경제도 잘되고 나라가 발전한다는 것이 소주성이다.”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정책이 된 이유는….

“기업주도성장, 투자주도성장은 학계에서 많이 나왔고 정책으로도 많이 채택됐다. 이른바 ‘낙수효과’다. 그러나 한국에 글로벌 기업들이 많이 나왔지만 과연 가계가 다 좋아졌나. 좋아진 부분도 있지만 좋아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윗목 아랫목의 비유를 하자면 윗목까지 덥히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리고 때로는 덥혀지지 않을 때도 있다. 아랫목만 때는 성장전략을 계속했는데 윗목에도 같이 불을 때서 온기가 방 전체에 퍼지게 하자, 이른바 ‘분수효과’를 내보자는 대안이론들이 학계에서 많이 나왔다. 그것을 문재인 정부가 채택한 것이다.”

“성장-분배 조화가 세계적 흐름”
―그러나 학계에서도 비판이 많다. 소득이 느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동어반복인데 소득주도성장이 말이 되나, 경제학에 족보가 없다 그런 비판도 있다.

“가계소득이 늘고 소득격차가 완화되어야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어야 기업 투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얘기다.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를 보고 실감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학의 흐름 자체가 바뀌었다. 성장 일변도에서 성장과 분배를 같이 생각해야 한다, 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한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2008년 이전의 경제학은 낡은 경제학, 그 이후의 경제학은 새로운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주성의 대표 정책으로 알려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힘들게 해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해고되는 등 결과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조사 결과로는 하위 20∼50% 저소득층은 명확히 소득이 늘어났고, 최하위 10%는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이익을 본 사람도 있고 어려워진 사람도 있지만 긍정적 효과가 부작용보다 컸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공과에 대해서는 일부 사례만 갖고 주장할 게 아니라 경제 전체 데이터와 증거를 갖고 평가해야 한다. 한국경제학회에 이 부분을 본격 논의해보자고 제안해 놨다.”

―최저임금 인상 외에 소주성의 대표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

“가계소득 증가와 사회안전망 강화를 위한 45개 주요 정책들이 있다. 근로장려금(EITC·저소득 근로자에게 세금 환급 형태로 주는 장려금)을 크게 늘렸고 아동수당 기초연금 고용보험 실업급여 등도 많이 확충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는 일자리안정자금으로 임금을 보조해주고 고용보험료도 30∼50% 지원해준다. 가계소득을 늘리면서도 일본과 달리 현금을 주는 게 아니라 사용기한을 정한 지역화폐로 줘서 소비 진작 효과까지 노리는 게 소주성의 특징이다.”

―성과가 있었나.

“가계소득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소득분배도 좋아져 당초 목표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수출이 급감하고 다른 나라들은 성장률이 마이너스 4∼5%로 떨어지는데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0∼―1%대로 선방하는 것은 소주성이 방파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정책성과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변명을 하자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시점이 세계 경기가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경기 하강기에는 정책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 그래도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을 포용성장의 선구적 모델로 선정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본소득보다 소주성이 먼저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화두로 던진 기본소득이 화제다.

“소주성이 발전하면 기본소득이 된다. 소주성에 대해서는 그렇게 공격들을 하더니 더 급진적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비판을 안 해 좀 억울하다(웃음). 하지만 보수정당이 사회안전망 화두를 던진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해 잘된 일이다. 보편증세 등으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으면 전 국민 기본소득을 하면 좋겠지만,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저소득층부터 지원하자는 것이 소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토론을 기대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각국에서 불평등과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내놓은 정책들은 대부분 소주성이라고 보면 된다.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영세자영업자와 특수고용직 종사자, 프리랜서에 대한 고용안정지원금 등등. 특히 고용보험이 없는 근로자들도 실직하거나 소득이 줄었을 때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는 국민취업지원제, 누구나 평생학습과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는 국민내일배움카드제, 또 대통령이 말씀하신 전 국민 고용보험제 등이 준비됐거나 준비 중이고 이를 통해 사람에 대한 투자가 본격화될 것이다.”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경제 사회 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나.

“외환위기 때와 같은 후유증을 다시 만들면 안 된다. 당시 대량해고로 인적자본이 훼손됐고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사회양극화가 극심해졌다. 다시는 이런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 사람에 대한 투자, 사회안전망 확대, 양극화 해소가 핵심이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다. 또 한 가지 코로나로 인해 조달의 안전성이 중요해지고 글로벌 밸류 체인이 변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이 안전한 곳으로 확인되고 있는 만큼 국내 투자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과거엔 굳이 국내에 둘 필요가 있나 하던 노동집약산업 등도 최소한의 설비는 필요하다.”

―하지만 소주성이 기업투자를 어렵게 하지 않을까.

“최저임금 올리면 국내 공장들이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내 원래 전공 분야가 해외직접투자다. 세계 곳곳의 공장들을 다녔는데 해외로 나간 가장 큰 이유는 인건비가 아니라 시장 때문이다. 2008년 이후 세계화 속도가 이미 느려졌고 국제통상질서가 바뀌었다. 미중 무역갈등은 우연이 아니고 앞으로도 수출시장은 계속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로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다.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수출에만 올인하면 안 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고 선진국이 되려면 튼튼한 내수시장이 필요하다. 내수로 수출을 대체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수출과 투자 말고 또 다른 성장 엔진인 내수, 즉 소주성이 필요하다.”

“해외엔 포용성장, 한국엔 소주성”
―다른 나라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을 안 쓰는 것 같다.

“세계은행과 OECD는 포용적 성장을 권하고, 국제노동기구는 임금주도성장을 권한다.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는 이런 정책을 한국의 실정에 맞는 정책조합으로 만든 것이 소득주도성장이다.”

―정부는 코로나 경제난에 대처를 잘하고 있는 건가.

“큰 방향은 맞다. 그러나 40∼50년 고집해온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인데 고작 2∼3년에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한국판 뉴딜이나 소주성이나 모두 안 가본 길이다. 한국판 뉴딜을 통해 재난구제와 재난극복은 물론이고 제도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우리 사회에 컨센서스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개혁할 것이 너무 많다.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고용보험에 넣으려면 고용보험법을 개정해야 하고, 국민연금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도 없애야 한다. 그러려면 국세청의 세금 정보를 포함해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등 각 부처의 행정 정보들을 디지털화하고 서로 연계 공유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추진하다 그 후 중단된 ‘디지털 정부’가 그것이다. 그게 있어야 소득이 파악되고 선진국 같은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다 하기는 어렵지만 대통령은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국민 고용보험이나 좀더 촘촘한 사회안전망, 디지털 정부의 주춧돌을 놓고 싶어 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초를 놓겠다’고 한 것이다.”

::홍장표 위원장은::


―부경대 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한국경제발전학회 회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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