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가는 데 격리만 3주… 열 오를까, 감기 걸릴까 초긴장 21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5일 03시 00분


[글로벌 현장을 가다]
주변 도시서 2주, 베이징 1주 격리
호텔 배정 ‘복불복’… 결제는 현금
방 앞에 도시락 삼시세끼 배달

[1]격리 6일째. 격리자들이 처음 방 밖으로 나와 혈액 검사를 받고 있다. [2]격리 기간 동안 매일 두 차례 스스로 체온을 측정해 보고했다. [3]위챗을 이용한 체온 보고.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1]격리 6일째. 격리자들이 처음 방 밖으로 나와 혈액 검사를 받고 있다. [2]격리 기간 동안 매일 두 차례 스스로 체온을 측정해 보고했다. [3]위챗을 이용한 체온 보고.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19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한 호텔에서 격리 21일째를 맞았다. 해제 전날부터 지인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소시민적 갑론을박’을 벌였다. “금요일에 입국했으면 3주 뒤 금요일에 해제된다” “아니다. 3주를 다 보내고 이튿날인 토요일 0시에 해제된다”….

격리 해제 여부는 휴대전화로 발급되는 ‘베이징 헬스키트’(건강 상태를 증명하는 일종의 통행증)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헬스키트는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접속해 여권번호 등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발급된다.

19일 금요일 0시 5분…. 날짜가 바뀔 때 혹시 오류가 발생할까 봐 5분을 더 기다렸다. 몇 초 만에 녹색 베이징 헬스키트가 발급됐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격리가 이렇게 해제됐다. “호텔 격리는 사실상 ‘호캉스(호텔+바캉스)’아니냐”는 이야기도 더러 들었다. 하지만 외국인이 겪은 해외 격리생활은 수험생이 21일간 시험을 치르는 상황처럼 느껴졌다.

○ “중국 들어오는 외국인 거의 없어”
“당신이 이 호텔에 묵고 있는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중국에 입국한 첫날인 지난달 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에 있는 하이엇 부티크 호텔을 찾았다. 해외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14일간 집중 격리하는 곳이다. 격리자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장하이보(張海波) 씨는 “격리자 대부분이 해외에서 돌아오는 중국인들이다. 외국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 호텔은 인구 830만 명의 대도시인 선양 중심에 있다. 26층짜리 건물 두 동 대부분이 객실이다. 작은 규모의 호텔이 아닌데도 외국인이 단 1명뿐이라니. 해외에서 맞닥뜨린 코로나19의 여파는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외국인 입국을 철저히 막았다. 일부 특수 직군을 제외하고는 비자 발급을 아예 중단했다. 해외 도시와 베이징을 연결하는 직항 항공 노선도 모두 폐쇄했다. 겨우 비자를 받아도 베이징에 가려면 주변 도시인 선양이나 칭다오(靑島) 등에서 내려 14일간 격리를 거쳐야 한다. 이후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아야 베이징에 들어갈 수 있다. 어렵게 베이징에 가서도 다시 7일간 추가 격리를 해야 한다. 격리 기간만 총 21일이다.

호텔 격리에 드는 비용은 모두 본인 부담이다. 비용은 각각 다르다. 선양 하이엇 부티크 호텔에서는 14일 격리에 약 7000위안(약 120만 원)이 들었다. 호텔 선택권은 없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호텔 중 어디로 가게 될지는 ‘복불복’이다. 14일 격리에 60만 원 수준인 호텔도 있다.

호텔 배정은 ‘줄’에 따라 결정됐다. 선양 공항에서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갈 때, 중국 공안들이 일렬로 줄을 세웠다. 줄을 선 순서대로 20명씩 명단을 작성한 뒤 버스에 태웠다. 이 버스가 그대로 호텔로 향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옆으로 조금만 벗어나면 공안들은 줄 선 대로 버스에 오르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미 작성한 명단과 버스 탑승자가 달라지면 안 되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는 체크인과 동시에 격리 비용을 일시불로 내라고 요구했다. 신용카드는 불가하고 현금만 가능하다고 했다. 비상금까지 모두 털어 겨우 숙박비를 내고 방을 배정받았다. 지폐를 셀 때는 계수기까지 동원됐다.

○ 위챗·QR코드로 ‘막강 통제’
중국은 위챗과 QR코드로 코로나19 방역을 촘촘히 실행하고 있었다. 외국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위챗이 없으면 사실상 중국에 입국할 수 없다. 선양 공항에 도착한 뒤 처음 들은 얘기도 “위챗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격리 호텔에 들어갈 때까지 받은 QR코드는 모두 6개. 선양시 당국에 건강 상태를 신고하는 QR코드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입국한 125명 전원을 위챗 단체 대화방으로 초대하는 QR코드를 받았다. 하루 두 차례 체온을 측정해 보고하는 것도 위챗으로 QR코드를 스캔한 뒤 안내 절차에 따르면 된다. 격리가 끝나고 받을 수 있는 ‘녹색 통행증’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효율적 통제가 진행되는 동안 정부의 권한은 날로 막강해지고 있었다.

격리 기간 동안 최대 관심은 체온이었다. 매일 오전 8∼9시, 오후 5∼6시 스스로 두 차례 측정해 오후 6시까지 보고해야 했다. 겨드랑이에 끼워 측정하는 수은체온계가 방마다 비치됐다. 안내문에는 “체온을 사실대로만 보고하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0.1도만 올라도 불안해졌다. 체온계 숫자판에 숫자 ‘37’만 유독 빨간색인 점도 걱정을 키웠다. 한 번은 37도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정상 범위인데도 불구하고 두세 번 다시 측정해 36.9도로 보고하기도 했다.

격리 기간 동안 두 차례 검사(혈액·핵산)가 진행됐는데 검사 하루 이틀 전에는 체온에 더 신경이 쓰였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침을 한 번 꿀꺽 삼켜보고, 목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한국에서 챙겨간 비타민을 먹었다. 이마에 손을 얹어 보는 게 버릇이 됐고, 양치도 하루에 대여섯 번 했다. 감기에 걸릴까 봐 방이 더워도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 물건은 얼마든지, 인력 서비스는 불가
[4]아침식사로 제공된 도시락. [5]격리 12일째 핵산 검사를 받기 위해 격리자들이 줄을 서 있다. [6]격리 첫날 호텔에서 방 배정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텔비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4]아침식사로 제공된 도시락. [5]격리 12일째 핵산 검사를 받기 위해 격리자들이 줄을 서 있다. [6]격리 첫날 호텔에서 방 배정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호텔비 전액을 현금으로 지불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격리 기간 내내 호텔방 문 밖에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방역복과 고글 등으로 전신 무장한 호텔 직원들이 탁자 위에 끼니때마다 도시락을 두고 갔다. 복도에서 “아침밥이요”라고 소리치면 격리자들이 문을 살짝 열고 가져가는 식이다. 다 먹은 뒤에는 비닐봉지에 담아 문 밖에 내 놓으면 수거해 간다. 방 안으로 들어가는 도시락은 ‘탁자 위’, 다 먹고 방에서 나온 도시락은 ‘탁자 아래’다. 화장지나 칫솔 샴푸 비누 같은 생필품도 ‘탁자 위’에서 가져가면 된다. 생필품은 지나치게 많이 줘 다 쓰지 못했다.

반면 사람의 품이 드는 서비스는 전혀 없었다. 호텔 직원들은 방 안으로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방 청소나 베개 수건 교환 등은 어림도 없었다. 옷과 수건 등은 욕실에서 직접 빨아 스탠드에 걸어서 말릴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청소도구가 없어 남아도는 화장지를 물에 적셔 바닥을 닦아 내기도 했다.

처음 사흘 동안은 세 끼를 꼬박꼬박 먹었지만 나중에는 끼니를 건너뛰곤 했다. 활동량 자체가 적어서인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메뉴는 똑같이 반복됐다. 아침엔 만두와 찐빵, 점심엔 튀김요리, 저녁엔 생선구이다. 격리 7일째 날 주선양 한국총영사관에서 보내 온 컵라면과 김, 고추참치 등이 없었다면 못 버텼을지도 모르겠다.

선양에서 2주 격리를 마치고 12일 오후에 베이징에 들어왔다. 일주일 추가 격리를 해야 하는데 한국을 떠나기 직전 격리자를 받아주는 호텔을 어렵게 물색해 예약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베이징 분위기는 좋았다. 55일 동안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대응 단계를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12일부터 갑자기 상황이 악화됐다. 신파디(新發地) 농수산물시장에서 시작된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소 완화됐던 해외 입국 격리자 관리도 강화됐다. 중국 공안이 일일이 위챗 전화로 “격리 규칙을 철저히 준수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쨌든 목적지인 베이징에 들어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일주일 추가 격리는 상대적으로 쉬운 느낌이었다.

3주 격리를 마칠 무렵 SNS로 많은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생이별을 당한 ‘교민 이산가족’부터, 발령을 받고 베이징행을 준비하는 회사원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중국 입국이 쉽지 않아 보인다. 3주 격리도 힘들지만 항공편과 비자 발급이 여전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2일 만난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중국과의 협상이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7월 중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외국인 호텔 격리#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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