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나이 40이 넘어 망해 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의 이야기다. 찬실이가 공들여 준비하던 장편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술을 퍼마시던 영화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엎어지고 만다. 이제 찬실이는 집도 잃고 낯선 산동네로 이사를 하고, 여배우 집의 가사 도우미를 맡게 된다. 영화에 정신을 파느라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해 본 것이 한이 되어, 여배우의 과외선생에게 “들이대 보지만” 연하의 그 남자는 찬실에게 그저 누나로만 대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의 애정 고백이 민망해진 찬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하지만, 하필 그때 도시락통이 땅에 떨어져 산산이 흩어진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이번 생은 망한 게 아닐까. 찬실이는 돈도, 집도, 애인도, 자식도, 만들 영화도 없다. 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지? 이것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도 관심이 있기에, 코믹한 장면과 효과적인 음악 사용으로 흥겨운 이 영화를 숨죽이며 따라가 보았다. 영화는 거듭 강조한다. “네가 원하는 걸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찬실이가 원하는 게 뭐지?
물론 찬실이는 영화 만들기를 원한다. 그것이야말로 찬실이가 청춘을 갈아 넣은 영역이고, 여전히 그 일을 갈구한다. 그러나 영화가 전개되면서 찬실이가 원하는 내용이 살짝 바뀐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화가 아니야. 영화는 그 안에 있어. 즉, 찬실이가 원하는 것은 단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포함하되 영화보다 큰 어떤 것이다. 찬실이가 원하는 것은 삶 그 자체이다. 영화는 그 삶 안에 있을 뿐이다.
이 지점에 이르러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그간 꼼꼼히 관객들에게 보여준 것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영화는 공들여 다양한 가사 노동들을 보여준다. 집 안 청소, 콩나물 다듬기, 찌개 끓이기, 분리수거. 그리고 산책, 후배의 구토. 이 일상은 김초희 감독이 프로듀서를 했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나오는 일상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영화 속에서 찬실이가 프로듀서를 하던 감독은 술 마시다가 죽고, 살아남은 찬실이는 콩나물을 다듬는다. 삶이란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이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대신 애써서 해.”
이 깨달음에 이른 찬실이는 결국 자신의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랬던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찬실이가 만든 것으로 보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여준다. 설원으로 가득한 그 장면을 보며, 찬실이가 상상하고 좋아했던 속옷 바람의 배우 장국영이 박수를 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박수 쳐 주기를 바라지 않나. 이 박수를 받은 찬실이는 행복했을 것이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 영화를 요약하는 단 하나의 장면을 고른다면 찬실이의 마지막 장면이다. 어두운 산길을 내려가는 사람들 뒤에 남아 그들의 길에 찬실이가 전조등을 비추어주는 장면이다. 그때 전조등은 찬실이의 빛나는 새로운 광배(光背), 아니 광복(光腹)처럼 보인다. 남의 앞길을 비추는 전조등을 들고 있기에 생기는 빛과 음영 속에 서 있는 찬실이는 진정한 프로듀서이다.
이 영화는 지금은 중년이 된 영화팬들이 기억하는 기호들로 가득하다. VHS 비디오테이프, 아비정전, 오즈 야스지로, 장국영, 그리고 정은임의 영화음악. 90년 후반 어느 추운 겨울 미국 동부의 한 기숙사를 고 정은임 씨가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기숙사에 같이 살던 한국인 학생 몇 명이 근처 중국집으로 가서 밥을 먹으며 함께 담소를 나누었다. 물론 영화 이야기도 함께.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집주인 할머니가 한글을 갓 깨치고 죽은 딸을 그리워하며 시를 한 편 쓴다.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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