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 3품목에 대한 대(對)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한 지 내일이면 1년이다. 지난해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의 대일 의존도가 절대적인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불화폴리이미드의 3품목에 대해 기습적으로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8월부터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발표해 충격을 던졌다.
한국 관련 산업에 우려했던 만큼 큰 피해는 없었다. 업계의 신속한 대처와 정부의 정책 지원, 학계의 연구 성과 등이 어우러진 덕이다. 우리 기업들은 부품소재의 일본 의존도를 줄이고 수입처를 다변화했다. 이번 일로 “아베(총리)가 단잠에 취해 있던 한국 반도체산업을 바꿨다”는 말까지 나왔다. 반대로 일본 내에서는 “수출 규제가 일본 업체들에 타격을 안겼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11월 ‘일본종합연구소’는 ‘일본의 수출관리 강화 계기로 한국의 탈(脫)일본 추진되나’ 제하의 보고서를 냈다.
다만 그간 한국이 선방했다 해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업계에서는 일본이 추가적 규제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한국의 급소는 여러 군데 남아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역협회가 내놓은 지난해와 올해 1∼5월 수치를 비교해보면 국산화가 추진되는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1년 만에 85.8% 줄었지만 감광액인 포토레지스트(33.8%)와 폴더블폰에 사용되는 불화폴리이미드(7.4%)는 오히려 수입이 늘었다.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양국이 대결구도를 이어가면서 이웃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성찰을 잃었다는 점이다. 수출 규제를 풀기 위해서는 갈등의 출발점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양국 간 대화를 트기 위한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일본에서도 “징용 문제와 수출 규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법도 가능하다”(가와무라 다케오 일한의원연맹 간사장)는 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국회에서는 문희상 전 국회의장이 20대 국회에서 발의했다가 폐기된 법안이 재발의될 것이라고 한다. 좋든 싫든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정학적 상황을 한일 양국 지도부 모두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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