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즘 웬만한 식당이나 술집 테이블 가장자리에는 벨이 하나씩 달려 있다. 손님이 그 벨을 누르면 종업원이 요술램프 속 지니처럼 곧바로 달려오고, 그와 같은 접객 문화는 이미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됐다. 테이블 가장자리에 벨이 없으면 냅킨꽂이나 수저통 뚜껑이나 옆면에 벨이 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식당이나 술집을 찾는 손님 중에는 종업원을 불러서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벨이 어디 달려 있는지부터 먼저 묻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 벨도 나름대로 진화했다. 이를테면 소주 버튼과 맥주 버튼이 추가된 벨도 있다. 손님은 자신이 마시던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 싶으면 둘 중 하나를 누르면 된다. 그럼 종업원은 두 번씩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손님이 마시던 술을 갖다 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취한 손님은 아무 버튼이나 마구 누르기 때문에 종업원은 결국 두 번씩 왔다 갔다 하기 일쑤다. 취한 손님은 아무 버튼이나 마구 누른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한 베테랑 종업원은 눈치껏 소주와 맥주를 한꺼번에 가져온다.
나는 그 벨을 볼 때마다 식당 종업원인 친구 말을 떠올린다. 친구는 여러 식당에서 온갖 진상 손님을 두루 섭렵했지만, 벨소리만큼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벨소리가 꿈에도 종종 나올뿐더러, 자기가 다른 가게 손님일 때 다른 테이블 벨소리에도 매번 화들짝 놀란다고 했다. 친구 말 덕분에 나는 식당이나 술집에서 벨을 누르는 대신 이왕이면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길 기다린다. 한번은 한 식당에서 종업원과 눈이 마주치길 한참 기다렸다. 마침내 종업원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종업원은 다가와서 말했다. “손님, 필요한 게 있으면 벨을 누르세요.”
식당이나 술집의 벨은 소비자와 사용자 중심의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비인간적인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앞서 말한 사례뿐만 아니라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나 술집에서는 벨을 아무리 눌러도 아무도 오지 않을 때가 있다. 뒤늦게 온 종업원에게 왜 이제 왔냐며 볼멘소리를 해봤자 자기만 손해다. 종업원이 다시 오겠다고 하기 전에 서둘러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하는 편이 훨씬 이롭다. 다시 말해 손님이 벨과 씨름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바쁜 종업원을 괴롭힐 수 없다.
어쩌면 우리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것은 애초에 비인간적인 발명품이나 기술의 진보가 아닐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친구는 식당에서의 손님 접대를 오래전부터 자신의 직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손님들은 친구가 하는 일을 ‘존중받아 마땅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주변 사람들은 언젠가 친구가 제대로 된 일을 직업으로 삼기 바란다. 제대로 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따로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든 요술램프 속 지니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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