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 김모 씨(41)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의 6세 아들은 식중독의 일종인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이 집단 발병한 경기 안산시 A유치원에 다녔다. 아이는 지난달 13일 밤부터 설사를 했다고 한다. 체온도 39도까지 올랐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다음 날 밤에도 증세가 심해 응급실에 갔지만 해열제와 지사제를 처방받고 돌아왔다.
김 씨가 A유치원에서 식중독이 집단 발병했다는 걸 안 건 16일 오후. 당일 아침 심한 복통으로 다시 응급실로 간 아이는 뒤늦게 ‘햄버거병’(용혈성요독증후군·HUS) 의심 진단을 받았다. 그 작은 몸에 커다란 바늘을 꽂고 이틀간 투석 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병세가 호전돼 퇴원했지만, 아이는 아직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1년 이상 병원에 지속적으로 방문해 검사도 받아야 한다.
이번 식중독 사태는 A유치원 측의 보존식 관리 소홀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났다. 하지만 해당 학부모들은 A유치원의 ‘늑장 보고’가 화를 키웠다고 입을 모았다. A유치원에서 식중독 의심 증상자가 처음 나타난 건 12일. 하지만 박모 원장은 나흘 뒤인 16일 보건소가 사태를 인지하기 전까지 보건당국에 전혀 보고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15일 A유치원은 상태가 나빠져 결석한 원아가 34명이나 됐다. 여러 학부모들이 “아이가 혈뇨를 본다”며 심상치 않은 상황도 알렸다. 그런데도 A유치원의 대응은 굼뜨기 그지없었다. 16일에도 유치원 문을 열었고 급식도 계속됐다. 결국 아이들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 가족 간 감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현행법상 늑장 보고에 대한 처벌은 과태료가 전부다. 식품위생법 86조는 ‘식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세를 보이는 자를 발견한 집단급식소의 설치·운영자는 지체 없이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고 의무를 위반해도 처벌은 과태료 200만 원(1차 적발 기준)에 불과하다. 그것도 2007년 정부가 처벌을 강화한다며 100만 원 올린 액수다. 30일 안산시도 A유치원의 보고 의무 소홀에 대해 과태료 200만 원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처벌 기준이 턱없이 낮다 보니 이런 늑장 보고가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하일수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은 일반 항생제나 지사제를 사용할 경우 이른바 ‘햄버거병’으로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고 했다.
부모들은 오늘도 당연히 유치원을 믿고 자녀를 보내고 있다. 그런 아이의 평생을 늑장 보고와 같은 안일한 대처는 한순간 망가뜨릴 수 있다. 당국은 과태료 인상 등 처벌 강화를 통해 교육현장에서 확실한 책임감을 가지도록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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