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벤처가 이끄는 혁신 생태계를[기고/김홍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일 03시 00분


김홍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
김홍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
2018년 7월 중국의 한 글로벌 대기업이 필자가 재직하는 디캠프를 찾았다.

디캠프는 은행권의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만든 재단이다. 중국 대기업은 인공지능(AI), 제조, 하드웨어, 인프라 산업군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과 협업하고 싶으니 만남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흔쾌히 주선했고, 5개 스타트업이 중국 대기업에서 투자를 받았다.

현장에서 바로 그런 결정이 이뤄진다는 점이 신선해서 국내 한 대기업에 비슷한 시도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대답은 필자를 힘빠지게 했다.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합병(M&A)을 하고 싶지만, 갑질 경영이나 특허 빼돌리기 편견이 만연해 있어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갖은 오해를 사느니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거나, 외국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대답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젊은 창업자들은 구글, 애플,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대기업에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파는 게 꿈이다. 좋은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해서 계속 최고경영자(CEO)로 남거나 다른 창업에 도전한다. 그렇게 돈과 새로운 시도가 맞물리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시장은 그런 대기업과 창업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우리는 대기업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 때문에 상생에 실패하고 기회는 중국 같은 외국 대기업에 돌아가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19 영향으로 전 세계 교류가 급감하면서 우리나라 스타트업이 외국의 투자나 노하우를 얻기 힘들어졌다. 건강한 내부 생태계를 만들 기회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훌륭한 대기업들을 갖고 있다. 이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실리콘밸리를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 없이는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대기업을 생태계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침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5세대(5G), AI, 시스템반도체 등에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혁신 생태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내외 투자와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대기업과 벤처가 이끄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기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기업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절실하다. 지금까지처럼 기업을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분위기에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참여와 협력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성숙한 기업관도 필수적이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가장 큰 격차는 어쩌면 ‘기업의 역량’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자리 잡은 사회의 ‘기업관’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기업이 경제 뉴스가 아닌 검찰 수사나 정치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 필자는 정치인이나 법률가가 아니어서 시시비비를 따질 자격은 없다. 그러나 우리 글로벌 기업과 경영인들을 무조건 적대시하거나 위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도 우리 혁신 생태계 조성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홍일 디캠프(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
#대기업#디캠프#벤처#혁신 생태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