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전북 전주의 한 종합병원. 20대 남성 A 씨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갑자기 난입했다. A 씨는 휴대전화를 쥔 손으로 50대 여의사의 머리 등을 수차례 가격했다. 안전요원이 진료실로 뛰어 들어갔을 땐 이미 의사가 머리와 팔을 다친 상태였다. A 씨는 3개월 전까지 이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다. 2년 전부터 진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환자가 의사를 폭행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에서 진료 중이던 의사가 5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크게 다치는 일이 있었다. 두 달 뒤인 같은 해 12월 충남의 한 병원에서는 환자 유족들이 의사를 진료실에 가두고 폭행하는 일이 있었다. 올해 2월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도 의사와 보안요원이 환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잇따르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병원 내 주차장에서 낯선 사람과 마주치기만 해도 피하게 된다”고 했다. 그만큼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권준수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쩌다 보니 의사들은 개인 진료실 안에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뒷문을 만들어 두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 이후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의료 현장의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국회는 지난해 4월 이른바 ‘임세원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켜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였다. 의료진 안전을 위해 병원 내에 보안장비를 설치하고 보안인력을 배치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보안인력 배치를 위한 지원금이 1명으로 제한돼 있어 의료진 폭행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주의 병원에서 의사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일 입장문을 내고 재발방지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 시행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와 경찰에 요구했다. 학회 역시 ‘임세원법’ 시행 이후로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또 “이번과 같은 의료진 피해가 반복되는 진료 환경이 지속된다면 학회는 의료진과 환자 보호를 위해 특단의 대책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의료 현장에는 과부하가 걸려 있다. 이런 의료진들이 언제 당할지 모를 폭행 피해로 불안감까지 갖게 해서는 안 된다.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부가 좀 더 고민하고 대응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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