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쪽문으로 쫓겨날 때 당당하게 대문으로 들어온 새 여자에 관해 여자는 옛 남편에게 조심스레 타진한다. 남자의 능청맞은 비교. 용모며 솜씨가 다 그대보다 훨씬 못하다오. 이래저래 더 빼어난 여자를 왜 쫓아냈을까. 남자가 미색을 탐한 것이 화근이었다면 여자가 옛 남편 앞에서 공손히 ‘무릎 꿇었을’ 리는 없겠다. 허겁지겁 둘러댄 임기응변치고는 남자의 말본새 또한 사뭇 자분자분하다. 남자가 주동적으로 여자를 내쳤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평자들은 궁궁이(천궁)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서 그 실마리를 찾곤 한다. 남아 선호를 절대시한 봉건사회의 악습이 빚어낸 비극이라 본 것이다. 어지간한 깜냥이 아니고는 남편조차 가문과 사회 통념이 용인한 이 엄혹한 관습을 어쩌지 못했으리라.
‘새 여자가 좋다’고 하는 대신 ‘좋다고들 한다’는 맹한 듯 순진한 남자의 유체이탈 화법, 쪽문과 대문을 대비시켜 냉대를 비꼰 여자의 센스, 꾸역꾸역 해명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을 남자의 의뭉함 등에 민가 특유의 묘미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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