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봉[이준식의 한시 한 수]〈65〉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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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 하산 길에 옛 남편을 만났네/무릎 꿇고 옛 남편에게 묻는 말.

“새 여자는 또 어때요?”/“새 여자가 좋다고들 하는데 옛 사람만큼 예쁘진 않다오

얼굴은 비슷비슷해도 솜씨는 그렇지 못해요.”/“새 여자가 대문으로 들어올 때 옛 사람은 쪽문으로 나갔지요.”

“새 여자는 누런 비단을 잘 짜는데 옛 사람은 흰 비단을 잘 짰지요/누런 비단은 하루에 넉 장(丈)을 짜지만 흰 비단은

다섯 장 남짓을 짰지요/누런 비단을 흰 비단과 견줘보면 새 여자가 옛 사람만 못하다오.”

(上山採미蕪, 下山逢故夫. 長궤問故夫, 新人復何如. 新人雖言好, 未若故人姝. 顔色類相似, 手爪不相如. 新人從門入, 故人從閤去. 新人工織겸, 故人工織素. 織겸日一匹, 織素五丈餘. 將겸來比素, 新人不如故.)

―‘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상산채미무·上山採미蕪)’·한대 민가

자신이 쪽문으로 쫓겨날 때 당당하게 대문으로 들어온 새 여자에 관해 여자는 옛 남편에게 조심스레 타진한다. 남자의 능청맞은 비교. 용모며 솜씨가 다 그대보다 훨씬 못하다오. 이래저래 더 빼어난 여자를 왜 쫓아냈을까. 남자가 미색을 탐한 것이 화근이었다면 여자가 옛 남편 앞에서 공손히 ‘무릎 꿇었을’ 리는 없겠다. 허겁지겁 둘러댄 임기응변치고는 남자의 말본새 또한 사뭇 자분자분하다. 남자가 주동적으로 여자를 내쳤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평자들은 궁궁이(천궁)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에서 그 실마리를 찾곤 한다. 남아 선호를 절대시한 봉건사회의 악습이 빚어낸 비극이라 본 것이다. 어지간한 깜냥이 아니고는 남편조차 가문과 사회 통념이 용인한 이 엄혹한 관습을 어쩌지 못했으리라.

‘새 여자가 좋다’고 하는 대신 ‘좋다고들 한다’는 맹한 듯 순진한 남자의 유체이탈 화법, 쪽문과 대문을 대비시켜 냉대를 비꼰 여자의 센스, 꾸역꾸역 해명하느라 진땀깨나 흘렸을 남자의 의뭉함 등에 민가 특유의 묘미가 엿보인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상봉#궁궁이#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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