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없는 부모는 ‘핵폭탄’[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4일 03시 00분


<16> 폭스캐처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1996년 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폭스캐처 농장에서 미국 굴지의 화학 회사 상속자인 존 듀폰이 레슬링 코치인 데이브 슐츠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재판 중에도 끝내 살해 동기를 말하지 않았고 3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인 2010년, 병으로 세상을 떴다. 영화는 존이 자신이 만든 레슬링 팀의 코치를 죽인 이유를 그의 마음의 행로를 따라가며 차분히 보여준다.

데이브와 마크 슐츠 형제는 둘 다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다. 형은 마크를 끔찍이 아끼지만 마크는 줄곧 형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다. 변변한 수입도 없다. 서울 올림픽을 1년 앞둔 1987년, 갑부 존 듀폰이 두 형제에게 영입 제안을 한다. 형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 거절하지만 마크는 자신을 알아준 존과 그의 재력에 끌려 펜실베이니아로 떠난다.

존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형과는 점점 거리를 두는 마크는 형의 지도 없이 연습할수록 방향을 잃고 자신을 돈으로 지배하려는 존에게 실망과 환멸을 느껴 삐뚤어진다. 동생이 걱정된 형은 존의 제안대로 폭스캐처 팀의 코치로 합류하지만 몇 년 뒤, 존에게 살해당한다.

존 듀폰은 50세가 되도록 친구도 없고, 아흔 살의 엄마에게 사랑받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인, 유년 시절에서 한 뼘도 성장하지 못한 철부지 억만장자다. 레슬링을 좋아하고 새를 관찰하는 걸 즐긴다. 새에 관한 책도 썼다.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특권 계층의 자제들 중 유독 새 전문가가 많다는 사실이 우연 같지 않다. 존의 엄마는 평생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고, 무시했다. 존이 슐츠 형제에게 손을 내민 이유는 절박한 ‘SOS’였을지 모른다. 친구가 되어 달라는, 자신을 인정해 달라는. 하지만 존은 친구 사귀는 법을 몰랐고,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돈의 힘이 통하지 않자 데이브를 죽인다.

모든 문제아 뒤에는 반드시 문제 부모가 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을 탓할 뿐, 부모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미움받아 마땅한 자식이 되려고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부모 때문에 생긴 분노는 내면에 쟁여지다가 무고한 제3자를 향해 폭발한다.

만약 존 듀폰에게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더 이상 기대하지 말고 그 사랑을 너 스스로에게 주라고 말해주는 이가 있었다면, 사랑받지 못한 건 아이가 아닌 엄마의 잘못이었다는 아픈 진실을 깨달았다면, 존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진 이가 돈과 권력을 쥐면 부모에 대한 분풀이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해댈 수 있다. 핵폭탄이 따로 없다. 지구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
 
이정향 영화감독
#폭스캐처#존 듀폰#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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