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하고 나는 그런 날을 보기 전에 죽겠지. 그런 날이 와도 내 이름은 완전히 잊혔을 걸세.”
―스티븐 존슨 ‘감염 도시’ 중에서
19세기 영국 런던에도 전염병이 돌았다. 콜레라가 창궐해 세 블록에서 100명 이상이 죽었다. 대도시 자체가 콜레라균의 산파였다. 도시는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기존에 없던 산업과 활력이 생긴 대신에 용변의 총량도 늘어났다. 공공위생 시스템이 없는 채 인구밀도가 높아지니 세균이 인간에게 퍼지기도 쉬웠다. 당시 사람들은 냄새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해 아주 작은 바이러스라는 게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존 스노라는 의사만 소수 의견을 냈다. 그는 냄새에 끌리는 대신 통계를 분석했다. 지역 우물과 권역별 사망자 데이터를 보고 콜레라가 수인성 전염병임을 추론해 위험 지역의 우물을 폐쇄시켰다. 그때 그의 말을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냄새는 코에 닿지만 세균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존 스노는 세상이 자기의 발견을 알아주지 않을 때 ‘질병의 전파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질병 박멸의 수단이 될 것이다’란 말만 남겼다. 과학저술가 스티븐 존슨의 ‘감염 도시’에 나온 이야기다. 지금 우리의 상식이 된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는 존 스노의 발상에서 왔다.
21세기의 최신 전염병은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스케일만 커지고 양상은 비슷하다. 서울을 비롯한 세계의 대도시에 전염병이 퍼진다. 마음속 공포와 혼란이 무수한 ‘포스팅’이 되어 SNS를 타고 모두의 스마트폰 터치스크린에서 번쩍거린다. 하지만 도시 속 어딘가에 이 시대의 존 스노가 있을 거라 믿는다. 온갖 신형 플랫폼에서 예언자 지망생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여도 그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SNS 같은 건 할 여유도 없는 채로. 그런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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