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초 청와대의 한 참모는 대통령 지지율 목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공동선수단 구성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과 비트코인 규제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던 때다. 차기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41.1%) 수준만 유지하면 레임덕 없는 국정 운영과 정권 재창출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웬만큼 떨어져도 청와대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호기로운 입장을 내놓는 데는 이런 판단이 깔려 있다. 특히 청와대는 지지층의 핵심 축인 3040세대 동향에 민감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 여론조사기관 3, 4곳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세대별, 사안별 민심 동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부동산 대책에 대한 긴급보고를 받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다음 날 부동산 대책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도 3040세대의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여권의 분석이다. 실제로 친문 지지층이 주로 활동하고 있는 온라인 사이트에서조차 6·17부동산대책 이후 “정부가 지지층인 서민이 서울에 집 가진 중산층이 돼 보수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내 집 마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발 지지율 위기에 청와대가 꺼낸 카드는 공급 확대와 다주택자 과세 강화다. 이를 신호로 민주당에선 매일같이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와 민간임대소득자 공제 축소 등 강경책을 쏟아내고 있다. 거듭된 부동산 대책에도 3040세대의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것은 규제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집값을 올리고 있는 다주택자 때문이라는 태도다.
하지만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청와대와 여당의 처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미심쩍은 대목이 한두 곳이 아니다. 사실 청와대와 여당이 ‘긴급보고’를 통해 언급한 공급 확대와 다주택자 과세 강화는 2018년 경제정책방향에서 확정된 뒤 2018년 9·13대책에서 이미 도입된 내용들이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다주택자 과세 강화의 이유로 조세 형평성 문제를 들었지, 발표문 어디에서도 부동산 시장 안정을 주요 목표로 내걸지는 않았다. 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다주택자가 없으면 주택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라며 “진짜 내 돈 들여서 투자하는 분은 투기꾼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해 전·월세 값 안정에 동참하는 다주택자는 투기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가 혜택을 줘야 할 대상이라는 취지다.
그럼 최근 들어 다주택자가 부동산 값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늘어난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전년 대비 다주택자 증가 폭은 7만여 명으로 2017년(14만 명)의 절반으로 뚝 떨어진 것을 보면 부동산 시장을 좌우할 만큼 다주택자가 크게 늘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다주택자가 집을 내놔야 주택 값이 안정된다면 거래세를 낮춰야 할 텐데 오히려 정부와 여당에선 다주택자 양도세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여당에서 연일 다주택자 때리기에 나선 것을 두고 ‘도그-휘슬(dog whistle·개호루라기)’ 전략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집단을 겨냥한 비밀 메시지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위기돌파용 전략이라는 것이다.
위기 국면에서 지지층 결집은 정치의 기본이다. 문제는 지지층 결집으로 떠받친 지지율이 정책 실패를 가리고 오히려 근본 대책을 찾기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의 정치적 성공이 달갑지만은 않다”며 “지지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정책적으로 성공해 역사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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