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던 거예요….” 지난달 벌어진 ‘구급차 막아선 택시 기사’ 사건은 파장이 무척 거세다. 이송이 지연된 뒤 세상을 떠난 어머니(79)의 아들 김모 씨(46)는 서러운 마음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이 청원은 6일 기준 동의가 58만 명을 넘어섰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성토 일색이지만 어머니를 잃은 자식의 마음만큼 애끊진 않을 터. 김 씨는 병원 이송을 15분가량 늦춘 택시 기사 A 씨를 처음에 업무방해죄로만 처벌할 수 있단 얘기에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어머니를 위해 최소한 뭐라도 해야겠단 맘에 청와대 문을 두드렸다.
사회적 관심이 크다 보니 경찰 수사도 적극적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6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혹은 업무방해 등 형사법 위반 혐의를 전반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라 했다. 강력계 팀을 추가 투입한 데 이어, 고인의 사망과 사고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도 있는 의무기록 사본과 병원 의료진 진술을 확보했다.
도심을 누비는 구급차를 보며 진짜 응급환자가 탔을까 의심해 본 경험은 아주 흔하다. 실제로 일부 사설 구급차가 ‘가짜 사이렌’을 울린다는 폭로도 있었다. 꽉 막힌 도로에서 길을 비켜줄 땐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운전자들은 기꺼이 차로를 양보한다. 어찌 됐건 환자가 탔을 거라 믿고 본다. ‘언젠가 저 앰뷸런스에 탄 생사가 걸린 환자가 나 혹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는 양보하고 인내한다.
이번 사건에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사회적 분노가 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구급차 블랙박스 영상 등에 따르면 A 씨는 “명함을 주고 가겠다”는 구급차 기사에게 “사고 처리가 먼저”라며 길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자신이 ‘사설 구급차’를 몰았던 경험을 거론하며 “응급환자가 탄 게 맞느냐” “구청에 신고하면 다 걸린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환자 탑승을 확인한 뒤에도 A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가야 할 병원은 겨우 100m 남짓 떨어져 있었다.
어쩌면 A 씨는 자신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물론 A 씨가 막아선 약 15분의 지체가 고인의 사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일고 있는 공분은 법적인 혹은 과학적인 근거를 두고 벌어진 게 아니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신뢰’가 어그러졌기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들 김 씨는 전화 통화에서 바람이 있다고 했다.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사건이 철저히 수사돼야 하는 이유는 유족들의 설움을 풀어주는 데만 있지 않다. 이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기 위해서라도 절대 가벼이 넘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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