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경기 팀에서 폭행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이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제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이 ‘벌금 20만∼30만 원에 그칠 것이니 고소하지 않을 거면 말하지 말라’며 사실상 압력을 가했다”고 했다. 최 선수가 경주시청 감독 등을 고소한 사건을 초동 수사한 경찰이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듯한 직무유기성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관련 기관들이 한결같이 직무유기성 행태를 보였다. 최 선수는 감독 등의 폭행과 폭언을 견디다 못해 2월 6일 경주시체육회에 이런 사실을 처음 신고했다. 3월 가해자들을 검찰에 고소한 데 이어 4월 초 대한체육회와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을 냈다. 지난달 22일에는 대한철인3종협회에, 사망 하루 전날인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몇 달 동안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기관들은 최 선수의 절규를 사실상 외면했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접수 두 달이 넘도록 쉬쉬하며 미온적으로 대처해 최 선수를 절망으로 몰아갔다.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는 최 선수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날 최 선수에게 ‘경주시청 측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혐의를 모두 부인해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취지로 통보했다고 한다.
최 선수의 안타까운 죽음은 신고를 받은 관련 기관들이 최 선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제 할 일을 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 뒤늦게 대한체육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직무유기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든 기관들이 벌이는 ‘셀프 조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체육계 폭력 대책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기관들이 제 할 일을 방기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나서 관련 기관들의 직무유기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제2, 제3의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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