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 후유증 대구 코로나 전사들, 이대론 2차유행 감당 못해[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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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권배 대구 계명대 동산의료원장

김권배 계명대 동산의료원장은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공공 투자 및 지역 단위별 사전 훈련 등을 통해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김권배 계명대 동산의료원장은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공공 투자 및 지역 단위별 사전 훈련 등을 통해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안영배 논설위원
안영배 논설위원
《광복 이듬해인 1946년 한반도는 전염병이 휩쓸었다. 연초부터 천연두와 발진티푸스가 나돌기 시작하더니 뒤따라 콜레라마저 창궐했다. 중국 상하이에서 부산항으로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전파된 콜레라는 특히 대구경북 지방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해 5월 경북 청도에서 첫 콜레라 환자가 나온 이후 이웃한 대구는 전국적으로 발병률 1위, 사망률 1위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74년 후인 올해 2월, 중국발 코로나19가 청도와 대구의 신천지교회 교인들을 집단 감염시켰다. 대구는 또다시 전염병과의 전쟁 최전선이 됐다. 대구는 2, 3월에 집중적으로 환자가 발생해 수도권보다 많은 6900여 명의 누적 확진자(7월 5일 기준)를 기록했다. 그러나 두 사태의 결과는 매우 다르다. 70여 년 전 대구는 콜레라 창궐로 민심이 흉흉해졌고 좌익의 선동에 의한 10·1사태를 겪었지만, 지금은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K방역의 모범 기지가 됐다.》

콜레라 창궐 당시 퇴치 선봉에 섰던 대구 동산병원(동산기독병원)의 후신 계명대 동산의료원도 이번에 큰 주목을 받았다. 동산의료원은 헌신적이고 발 빠른 대처로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 언론으로부터 배움의 대상이 됐다. 감염병 전쟁의 최전선 사령관인 김권배 동산의료원장(69)을 만났다. 그는 계명대동산병원(대구 달서구 신당동 소재)과 그 분신 격인 대구동산병원(대구 중구 동산동 소재)을 통합 지휘하고 있는 의료 책임자다.

환자 찾지 않는 ‘코로나 병원’
―병원 방문자들이 손 소독과 열 체크를 하고 이름과 연락처를 기입하는 것 빼고는 대구동산병원이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다.

“코로나19가 들불처럼 번져 나갈 때 우리 의료원은 대구동산병원을 통째로 비워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토록 했다. 대구 지역 감염이 안정세에 접어듦에 따라 115일 만인 6월 15일부터 예전 상태로 복귀했다. 현재 외래환자들이 오가는 병원 본관은 한 달간의 고강도 멸균과 소독 작업을 거친 끝에 정상 가동되고 있다.”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대구동산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


동산의료원은 7월 5일 기준으로 확진자 1058명 중 964명(91%)이 완치돼 퇴원했고, 22명은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대구동산병원에 입원 중인 11명의 확진자는 본관과 분리된 병동에서 별도로 치료받고 있다. 본관 1층 로비에 전시된 ‘코로나19와 벌인 115일간의 사투’라는 제목의 현장 사진들이 당시 치열했던 ‘전쟁’을 엿보게 한다.


―병원을 찾으면서 ‘코로나 병원인데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솔직히 없지 않았다.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후유증이 아직도 있다. ‘오염병원’이라는 오해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선지 코로나19 이전 하루 700명 수준이던 외래환자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어 병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 병원이라는 치명적인 이미지를 감수하면서까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나선 이유는.

“우리 의료원의 설립 이념과 역사적 소명 의식 때문이다. 120년 전 기독교 선교사들이 복음과 함께 의술을 펼치기 위해 병원을 세운 이후, 우리 의료원은 지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원칙과 사명감으로 일해 왔다. 역사적으로도 우리 의료원은 지역 감염병을 단 한 번도 외면하지 않고 극복해 왔다.”

동산의료원의 역사는 대한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의료선교사 우드브리지 존슨(1869¤1951)이 대구 중심지인 약전골목에 ‘미국약방’을 세워 약을 나눠 준 게 시작이다. 이후 정식으로 제중원(濟衆院)이라는 병원 이름을 내건 존슨 선교사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천연두 예방 백신과 학질(말라리아) 치료제를 보급하고, 한센병 환자 구제 사업과 풍토병 치료에 앞장서는 등 감염병 치료에 집중했다. 제중원은 1903년 현재의 대구동산병원 자리로 옮긴 후 ‘동산병원’으로 불렸고, 1980년 계명대와 통합해 계명대 동산의료원으로 탈바꿈한 뒤에도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겨울에 2차 팬데믹 예상돼
―소규모 집단 감염이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 사람들은 혹독한 시련을 겪은 경험 때문에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해 왔고 꾸준히 안정세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다중이용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확산되고 있어 대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일상생활에서 거리 두기를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않는 한 추가 전파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

―곧 휴가철이다. 특히 주의할 점이 있다면….

“올여름은 평년보다 폭염이 잦을 것으로 전망되고, 휴가 시즌은 해수욕장 개장 등 사람들이 밀집할 수 있는 시기여서 우려된다. 밀집·밀폐된 공간은 코로나19의 온상지라고 여겨야 한다.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덥고 불편하더라도 최소한 비말차단용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2차 팬데믹도 거론하는데….

“우리 의료원은 25명의 감염병 관련 전문의가 포진해 있다. 이분들에 따르면 대체로 2차 유행이 올가을에 시작돼 11월¤내년 2월경 절정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고강도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 생활방역 등의 방법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2차 팬데믹이 오면 잘 대처할 수 있을까.

“대구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대구가 빠른 속도로 안정세를 찾게 된 것은 빠른 검체 검사 덕분이다. 신속한 검사 및 결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감염자 추적 등을 통해 방역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확산을 막을 수 있었다. 2차 팬데믹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서도 대량 검사를 신속히 진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 놓아야 한다. 또 막상 재유행이 닥치면 공공 의료기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의료 자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공공적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도권에서 이미 병상 부족 등의 문제가 나오지 않는가. 따라서 민간 의료기관이 감염병 관리 시설 및 장비를 확보하고, 지역 단위별 사전 훈련을 통해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으로 지원해야 한다.”


K방역의 숨은 영웅들
보호장구 착용을 한 뒤 코로나19 병동 근무에 들어가는 의료진.
보호장구 착용을 한 뒤 코로나19 병동 근무에 들어가는 의료진.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인 대구 사람들의 시민의식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절정에 달했을 당시 우리 의료진은 24시간 대기 상태로 기진맥진했다. 그런 의료진에게 ‘우리 대구시민은 대구동산병원을 잊지 않고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선생님들 힘내세요’ 등의 격려와 응원 메시지는 지친 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다. 의료진은 각계의 정성이 담긴 마스크, 체온계, 무전기, 과일, 컵라면 등 기부 물품을 보면서 사명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또 대구시의사회를 중심으로 의사·간호사 등 400여 명이 우리 병원으로 달려와 자원 봉사를 했다. 한 의사는 한 달 이상 의료 봉사를 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런 분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코로나19 위기를 잘 넘겼다고 생각한다.”

김 원장은 이름도 남기지 않은 일반 자원봉사자들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밀려드는 환자에 비해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하던 상황에서 5분만 움직여도 땀을 비 오듯 흘리게 되는 방호복을 입고서 환자 이동 및 간호 보조, 식사 배식 등 힘든 일을 기꺼이 맡아 하고서는 유유히 사라진 이들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하던 그들이야말로 코로나19의 진짜 영웅”이라는 것이다.

―의료진이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까지 10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하면서 특히 간호사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계명대동산병원에서 대구동산병원으로 파견나간 수간호사는 장갑을 오래 착용한 나머지 손바닥에 피부병이 생겼다. 20대 간호사는 극도의 피로감과 감염 공포 등으로 공황장애에 걸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코로나19와의 사투에서 고군분투해 온 의료진은 번아웃(burnout)돼 무력감이 클 수 있다. 자신들이 소모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이분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휴식, 그리고 적절한 보상 등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서 감내한 손실과 보상은 어떻게 됐나.

“대구동산병원은 약 120억 원의 손실을 보았고, 손실 일부를 우선 지급하는 개산급으로 약 38억 원을 받았다. 6월25일에는 대구시로부터 약 50억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민간병원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전담병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의료기관에 대해 적극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이런 보상 정책이 향후 민간의료의 공공적 역할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대구동산병원은 대구 3·1운동을 상징하는 3·1운동로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던 곳이다. 어려움이 닥치면 힘을 합치는 한국인의 DNA가 응축된 이곳에서 코로나19 위기를 이겨낸 대구의 저력, 그리고 한국인의 저력을 되새겨 보았다.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

:김권배 의료원장은::
―경북고, 경북대 의대
―계명대 의대 내과학교실 교수
―계명대동산병원 심혈관연구소 소장
―대구경북병원회 회장
―계명대동산병원장
―현 계명대 의무부총장 겸 동산의료원장
―현 (사)동산의학연구재단 이사장
#코로나19#2차팬데믹#코로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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