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에서 시작하는 테헤란로는 탄천을 건넌 후 이름이 올림픽로로 바뀐다. 도로명으로는 두 도로지만 물리적으로는 한 도로다. 건축적으로는 강남역에서 삼성역은 마천루 길이고 삼성역에서 잠실역은 100층 이상 건축이 둘이나 세워져 초고층 건축 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 마천루 길은 동서 방향이다.
마천루라고 해서 모두 다 랜드마크 마천루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마천루가 랜드마크가 되기 위한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뉴욕의 경우를 보면, 세 가지다. 첫째는 상업성. 크라이슬러 빌딩처럼 주요 역세권에 있을 때다. 둘째는 상징성이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도시에서 가장 높을 때다. 셋째는 바로 록펠러센터처럼 ‘소통’할 때다.
강남 마천루 길의 시작점인 삼성타운(2008년 준공)은 첫째에 해당하고 종결점인 롯데월드타워는 둘째에 해당한다. 대개 성공하는 마천루 길에는 길의 시작과 끝을 붙잡아주는 북엔드 마천루가 필요한데 삼성타운과 롯데타워가 강남 마천루 길에서 그 역할을 담당한다. 두 마천루 모두 미국 KPF건축사사무소가 디자인했다. 이 길에는 세 번째 성공 조건을 충족하는 KPF 마천루가 두 개 더 있다. 하나는 DB금융센터(옛 동부금융센터·2002년 준공)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코P&S타워(옛 포스틸타워·2003년 준공)다. 전자는 하늘과 소통하고, 후자는 땅과 소통한다.
DB금융센터의 관전 포인트는 동측 입면이다. 보통 건물은 앞태에 멋을 내고 옆태는 밋밋한데 이 건물은 옆태가 눈을 끈다.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삼각형과 한 개의 평행사변형이 4개의 사선을 만든다. 마천루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사선에서 긴장감이 돈다.
마천루의 도로면 평행사변형 볼륨을 가로에서 보면 아래는 얇고 위는 두꺼워 마천루가 앞으로 넘어질 것 같은 착시를 유발한다. 이 시각적 위태위태함이 땅에 머물러 있던 시민들의 시선을 하늘로 인도한다. 발꿈치를 든 발레리나처럼 마천루로 하여금 중력을 이기고 하늘로 치솟게 한다.
이에 반해 포스코P&S타워는 땅과 소통한다. 마천루의 저층 유리 껍질을 앞으로 잡아당겨 가로를 덮는다. 로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공간을 외부화해 공공에 내어준 보기 드문 마음씨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영락없이 공공을 위한 큰 투명우산이 된다. 이 널찍한 투명 경계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생기가 도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마천루의 모서리 철 공예가 철을 다루는 회사답게 거리를 살린다. KPF는 철 다루는 솜씨가 아주 빼어난 건축디자인 회사인데 그 점에서 포스틸이라는 철 회사와의 만남은 천생연분 찰떡궁합이다. 역삼역 3번 출구로 나와 걸으면 거대한 철침이 마천루 꼭대기에서 시작하여 보는 이의 눈앞에서 멈춘다. 그 궤적을 따라 하늘에 있던 빛이 스키 선수처럼 활강하여 땅에 다다른다.
KPF는 1980년대 초 시카고강 변곡점에 세운 333 왜커 드라이브 마천루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후 10년 주기로 변신하며 글로벌 마천루 디자인 시장에서 강자가 되었다. 서울 중구 플라토미술관과 인천 송도 포스코타워송도(옛 동북아무역타워)도 KPF 손길에서 나왔으니, KPF와 우리의 인연은 각별하다. KPF 디자인은 2000∼2010년대에 정점을 찍었는데 그들의 걸작 4개가 강남 마천루 길인 테헤란로에 서 있다.
강남 마천루 길에는 KPF의 북엔드 마천루로 삼성타운과 롯데타워가 있고, 두 타워 사이에 아코디언의 칸막이처럼 DB금융센터와 포스코P&S타워가 있다. DB금융센터가 하늘과 소통하는 사선이라면 포스코P&S타워는 땅과 소통하는 덮개다. 회사 사옥 마천루라 할지라도 마천루라면 먼저 전자처럼 스카이라인을 살리고 후자처럼 스트리트스케이프(가로 경관)를 살려야 한다. 그래야 세계적인 마천루 길이 탄생할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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