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현지 시간) 오후 3시. 프랑스 파리 중심가 리볼리의 ‘유리 피라미드’ 주변은 비교적 한적했다. 평소처럼 수백 m 줄을 선 채 뙤약볕에 지친 표정을 짓던 인파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온라인 예약 후 지정 시간에 관람 가능”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방문객들은 마스크를 쓴 직원들에게 예약권을 보여준 뒤 바로 입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3월 폐쇄됐다가 4개월 만에 다시 문을 연 루브르 박물관의 모습이다. 재개장 첫날 모습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화제였다. 매년 1000만 명이 찾는 루브르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처럼 장기간 문을 닫은 적은 처음인 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박물관 미술관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유럽 사회의 화두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날 루브르 관람법은 이전과 달랐다. 사전 예약은 필수. 현장에서는 입장권을 살 수 없었다. 마스크가 없어도 입장 불가다. 입장객 수는 30분당 500명 이하로 제한됐다. 이날 총 관람 인원은 7000여 명으로, 성수기 하루 관람객(5만 명)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또 타인과 1m 이상 거리를 유지하면서 한쪽 방향으로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관람객이 뒤죽박죽 섞이며 바이러스가 확산될 위험성을 막으려는 조치다.
각종 제한이 많아져 관람객 불만이 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반대였다. “사람이 이렇게 적은 루브르는 처음”이라는 감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루브르 상징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 앞에서 이런 모습이 특히 두드러졌다.
파리시민 로헝 씨는 “지난해에는 1시간 반 줄을 선 후 모나리자 앞에 도착해 1분 감상하고 전시실에서 퇴출당했다”며 “천천히 그림을 음미하니 모나리자의 미소가 활짝 펴진 거 같다”며 웃었다. 또 다른 관람객은 “좋은 시절도 잠깐”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막혔던 국경이 개방돼 곧 관광객이 몰려오면 다시 시장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루브르 관람객의 75%는 비유럽권에서 왔다.
최근 파리 근교 베르사유 궁전, 북부 노르망디 몽생미셸 등에도 같은 이유로 현지인들이 몰리고 있다. 프랑스 유명 고고학자인 장뤼크 마르티네즈는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가 역설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람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런 프랑스인들의 반응을 보면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오버(over)’와 ‘투어리즘(tourism·관광)’이 결합된 말로, 과도하게 많은 방문자들이 특정 문화유산에 몰리면서 일대가 혼잡해지고 훼손된다는 의미다. 세계관광기구(UNWTO) 분석 결과 2000년 6억 명이던 국제 관광객 수는 2018년 14억 명으로 급증했다. 이 중 절반(7억 명)이 유럽을 찾았다.
루브르 박물관을 시작으로 런던 내셔널 갤러리 등 유럽 내 주요 박물관, 미술관들이 속속 재개방되고 있다. 각 관마다 나름의 ‘코로나 시대의 관람법’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버투어리즘에 대응하고 새로운 관람 문화를 재정립하는 계기로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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