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열정을 쏟아 헌신한 건설역군들을 비롯한 설계 및 건설업체명을 새겨 후세에 기리고자 한다. 2020년 7월 7일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
경북 김천시 추풍령휴게소에 며칠 전 세워진 경부고속도로 ‘준공 50주년 기념비’ 사진을 보며 조금 놀랐다.
‘박정희’라는 이름이 기념비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은 이 정권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다. “옆에 있는 50년 전 세운 기념탑에 박정희 전 대통령 이름이 있어서 50주년 기념비엔 넣지 않았다”는 도로공사의 설명도 그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군수송덕비를 세우던 자유당 시절도 아닌데 큼직한 활자체로 ‘김현미’라는 이름을 새겨 넣는 ‘담대함’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역사가들이 현 집권세력의 특징을 평할 때 빠지지 않을게 바로 ‘뻔뻔함’일 것이다. 조국을 정점으로 이 정권의 장관들, 여당 고위직들은 그 어떤 억지스러운 일을 행하면서도 세상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특질을 보여왔다.
“공(公)과 사(私)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정(正)과 사(邪)는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8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한 구절이다. 권력의 검찰 장악 시계를 되돌려 놓으려 한 장관으로 기록될 게 자명한 인물이 “더 이상 옳지 않은 길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바를 正, 공평할 公자를 쓴 것도 어이 없는 일이다.
과거 독재의 하수인들은 부끄러워하는 시늉이라도 냈지만 이 정권 사람들은 억지와 독선을 행하면서도 떳떳하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전술적 유불리만 따지는 게 습성이기 때문이다. 내세울 논리적 근거가 하나라도 있고, 우리 진영에 필요한 일이라는 판단만 서면 어떤 무리수도 개의하지 않는다.
김현미 장관이 “(부동산)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 속엔 부동산 논란이 좌파권력에 유리한 게임이라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수년 전 공유경제에 대한 여권 내부 보고서 내용에 놀란 적이 있다. 보고서는 공유경제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여부가 아니라, 공유경제와 노조 가운데 어느 쪽 편을 드는 게 정권에 유리한지에 집중했고, 결론은 여당의 지지기반인 노조 편을 들어야 한다는 쪽이었다. 오로지 좌파 정권 재창출에의 유불리가 판단기준인 것이다.
부동산 폭등도 대선 때가 되면 여권에 유리한 이슈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대중들은 내 집 마련을 더 어렵게 만들고, 격차를 더 벌려놓은 정부를 원망하면서도 결국은 세금폭탄으로 강남을 혼내주고 뺏어줄 정당은 우파가 아닌 좌파라는 선택을 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배 아픈 심리도 달래주고 세금도 더 거두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전해도 집권세력은 장기집권과 절대권력에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체화하지 못한 자가 권력을 잡았을 때 민주주의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트럼프다. 하지만 미국은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상원의 고위 공직자 인준권과 필리버스터링 권한은 그 어떤 독재자라도 마음대로 국정을 좌지우지 못하게 견제한다. 상원의원들은 같은 당 대통령이라도 너무 나간다 싶으면 야당과 협력해 견제한다. 정치가 아니라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균형추 역할이다.
하지만 한국 여당은 반대표를 던졌다고 징계해버리는 획일주의 속에서 청와대 출장소를 자처하고 있다. 행정부 엘리트 관료들은 권위와 긍지를 잃고 집권세력에 영합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권력 집중화 속도도 매우 위험하다. 입법권 사법권은 물론 독재시절보다도 더 노골적이고 광범위한 친정권 언론군(群)이 형성돼 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정권은 연일 달콤한 정책을 쏟아내지만 미래의 돈을 현재에 쏟아부어야만 유지되는 신기루다.
여당은 득표에서는 절반도 얻지 못했지만 의석수만을 내세워 승자독식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다수결 원칙대로를 주장하는데 자신들이 야당일 때와는 정반대다. 목적 달성의 효율성, 재집권의 토대 마련을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민주주의 관행을 무시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신감은 전술적·기술적 측면에서 가공할 수준인 선전선동 능력에 바탕한다. 여권은 좌파이권 네트워크 관련자, 노조, 사회단체, 진보성향 맘카페 활동가 등을 합쳐 유권자의 30% 내외 골수 지지층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과거 독재자들도 관변단체등 상당한 고정 지지표가 있었지만 현 집권세력이 지닌 30%는 어떤 불리한 이슈가 터져도 맥점을 장악해 방어하고 프레임을 뒤집을 수 있는 전투력을 지녔다. 권력 핵심부에서 방어·공격 논리를 만들어내면 수많은 전사(戰士)들이 일선 온라인에서 전파하며 전투를 수행한다. 정권의 떡고물로 활동의 물적 토대도 넉넉하다.
형식적으로 법적 근거가 있고 절차를 밟았더라도 관행이나 무언의 합의에 어긋나면, 그리고 자신의 행위가 이중잣대나 내로남불로 비칠 소지가 있으면 스스로 삼가는 게 상식이다. 그런 상식을 저버리고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는 뻔뻔함은 바로 강력한 전사집단만 잘 먹이고 키우면 어떤 전투도 이겨 장기집권할 수 있다는 위험한 확신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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