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 국무장관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람이에요. 어떤 외교안보 정책을 준비 중인지 챙겨서 들어보세요.”
최근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이 연사로 나오는 싱크탱크 화상 세미나 일정을 알려주며 워싱턴의 지인이 해준 말이다. 차기 국무장관이라…. 블링컨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분야 선임고문으로 활동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직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1월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의 외교안보 진영이 싹 바뀌는 시나리오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바이든 캠프 내 인사들과 접촉해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부쩍 활발해졌다. 주요국 대사관들이 ‘바이든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문을 타전하며 미국의 정권 교체에 대비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와 경기 침체, 분열적 언사와 편 가르기 등 논란 속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일 하락 추세. 대선까지는 채 4개월이 남지 않았다.
바이든 캠프에 줄을 대려는 외교안보 분야 인사들도 넘쳐난다. 무급으로 정책자문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전문가와 전직 당국자까지 다 합치면 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이끄는 주요 인사로는 블링컨 외에 니컬러스 번스 전 국무부 정무차관,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안보보좌관 같은 거물들이 거론된다. 커트 캠벨,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와 토머스 도닐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도 참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을 가장 민감하게 살피고 있는 곳은 북한일 것이다. 북한은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미국의 대선 결과를 지켜본 뒤 움직이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상대)해야 한다”고 밝힌 부분에서 이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미국이 지금의 대선 위기를 넘긴다고 해도 그 이후 적대적 행동들을 예견해야 한다”며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 위협 관리’를 언급한 부분도 눈에 띈다.
바이든 후보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보다 강경하다. 그는 지금까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살인적인 독재자’ ‘폭군’ 등으로 부르며 비난해 왔다. 다만 실무 협상을 중심으로 한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며 북한이 정상회담 조건을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김 위원장과 만날 의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앞으로 이런 바이든 후보 측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이든 집권 시 협상 지렛대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북한이 가을쯤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높게 볼 경우 정상회담에도 나서려 하겠지만, 그 반대라면 ‘바이든 행정부’를 겨냥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같은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도 이에 대비한 장기적 관점의 대북정책과 한미 조율이 필요하다. 북-미 양쪽 모두 한발 물러서 있는 상황에서 조급하게 움직이기보다는 내년 이후를 바라보는 긴 호흡으로 대응 전략을 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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