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주도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돌연 보류한 배경을 두고 갖은 추론이 끊이지 않는다. 대남 압박 공세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 한발 물러섰다는 가설과 함께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주변 포진과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복구 등 심리전 재개에 부담을 느껴 ‘레드라인(금지선)’ 직전에 멈춰 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유야 어쨌든 정부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여당에선 김 위원장이 현명한 결정을 했다면서 치켜세우는 한편 종전선언, 대북제재 완화까지 거론하며 ‘북한 달래기’에 공들이고 있다. 북한의 ‘선의’에 우리도 ‘선의’로 화답하면 살벌한 대치 국면이 대화 분위기로 급반전될 것으로 기대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도발 유보’는 유화 시그널이 아니라 더 위험천만한 ‘벼랑 끝 전술’의 서막일 가능성이 크다고 필자는 본다. 북한의 도발 위협 공세가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와 방식으로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도발 보류 결정 다음 날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이 담화에서 “‘보류’가 ‘재고’로 될 때엔 재미없을 것”이라고 공개 협박한 것도 흘려듣기 힘든 대목이다.
군 안팎에선 ‘김여정발(發) 위협’의 본질은 대남 핵위협임을 간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개성·금강산 일대의 재무장화 위협 등 초강경 공세를 서슴없이 강행한 배경에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핵무력’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유화 모드로 비핵화 협상을 끌면서 핵무력을 증강한 북한이 바야흐로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최대 100기가 넘는 핵탄두를 비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의 핵보유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북한은 향후 ‘완성된 핵무장’을 뒷배로 삼아 더 치밀하고 대담한 대남전술에 ‘다걸기(올인)’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5월 말 김 위원장이 당 중앙위 확대회의에서 “핵전쟁 억제력 강화”와 “전략 무력의 고도의 격도(격발) 상태 운용” 등 핵위협을 쏟아낸 직후 김여정이 바통을 이어받듯이 대남도발 전면에 나선 것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김여정발 대남 위협’을 통해 북한은 어떠한 명분을 잡아서 초강경 공세를 벌여도 한국은 핵이 두려워 변변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핵무장을 불가역적 상황으로 굳히며 한미동맹 무력화에도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핵 문제의 책임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전가하는 여론을 남한 내에 확산시켜 동맹의 틈을 벌리는 데 주력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갈등이 주한미군 감축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정부여당 일각에서 김여정이 ‘친미 사대주의의 올가미’라고 비난한 한미 워킹그룹의 해체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의 동의 없이 대북지원을 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을 북한은 절호의 기회로 여길 것이 틀림없다. 김여정이 최근 담화에서 핵폐기는 꿈도 꾸지 말라며 불가역적인 대북 적대시 철회를 3차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로 못 박은 것도 그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구태의연한 ‘민족 공세’를 펼치는 것 또한 자명하다. 북한의 핵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자위적 수단인 만큼 주한미군 철수와 유엔사 해체 등 한국이 대미관계부터 청산해야 한다면서 ‘우리민족끼리’로 포장된 파격적 유화책을 쏟아낼 수도 있다. 같은 민족에게 핵을 겨눌 리 없다고 믿는 친북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북한의 ‘가짜 평화’ 공세에 솔깃해 맞장구를 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핵을 거머쥔 채로 한미동맹이 와해되고, 민족 구호가 넘쳐나는 상황은 북한에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대한민국을 핵으로 쥐락펴락하면서 결정적 시기를 엿보는 것이 북한의 대남 핵전략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북한의 대남전술에 대한 ‘일희일비’가 위험천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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