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의료용 마스크(N95) 재고가 없다고 이제 이름 쓰고 재사용하라고 한다. 중국으로의 마스크 수출은 200배로 늘었다던데 두렵고 착잡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던 2월 초순.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던 한 의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같이 호소했다. 이름 난 대형병원 응급실조차도 마스크에 이름을 써놓고 재활용해야 할 만큼 의료 비축 물자가 바닥 나 있다는 것. 특히 대구경북 지역 의료진은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막아주던 의료용 방호복(레벨D) 물량이 한때 1, 2일 치밖에 남지 않아 근무시간을 한계까지 늘려가며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미래통합당 백종헌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창궐하던 2월 레벨D 방호복 2만7000세트(1억8000만 원 상당)가 사용 연한이 만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 물자 재고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백 의원이 입수한 전반적인 국가 비축 물자 현황을 보면 설상가상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비축했던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는 줄줄이 사용 연한이 만료돼 1054만 명분, 약 1740억 원어치가 폐기됐다. 지금 비축하고 있는 양(1117만 명분)의 94.4%가 지난 5개월 새 버려진 것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복지부는 감염병의 대유행에 대비해 의약품과 개인보호구 등 장비를 사전에 비축해 관리하고, 유사시 지자체와 의료기관에 지원하도록 돼 있다. 각종 물품의 유효기간과 감염병 확산 상황을 고려해 순차적인 구매와 폐기 계획을 세워 효율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체계적인 관리가 되지 않다 보니 2009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한 뒤 항바이러스제 1159만 명분을 한 번에 비축했고, 항바이러스제의 유효기간 10년이 지난 뒤엔 무더기 폐기가 이어진 것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복지부는 “업체와 구매 계약을 할 때 협의 가능한 선에서 계약 물량의 일정량을 매년 신품과 교체하는 재고 순환 계약 등을 통해 추가 구매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개선 방안을 내놨다.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고도 달라진 게 없는 정부가 코로나19 이후엔 새로운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에서 감염병 대응을 위한 예산으로 총 8004억 원이 배정됐는데 그중 방역 물품 비축에 2009억 원이 투입된다. 이번엔 적재적소에 쓰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