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서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고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아니라고 한다. 혹시 누명을 쓴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증거가 있다. 흔히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는 정말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어린아이들 중에는 친구를 때려놓고도 자기는 친구를 때린 것이 아니라고 간주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A라는 아이와 B라는 아이가 있다. 이틀 전에 A라는 아이가 놀다가 B라는 아이를 밀어서 넘어뜨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선생님이 없었다. 화가 난 B가 A에게 소리를 질렀는데, 소리를 지를 때 선생님이 오셨다. B는 소리를 지른 것으로 선생님께 혼이 났다. 그런데 오늘 자유놀이 시간에 A가 B가 가지고 놀려는 공룡을 가로챘다. B가 A의 등을 세게 밀어버렸다. A가 넘어져서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 B는 이틀 전 일부터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때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에게 “너 때렸잖아. 왜 거짓말을 해!”라고 사건의 진위만을 따지며 혼을 내서는 곤란하다. 아이는 잘못한 것도, 때린 적도 없다고 생각해 억울해진다. 우선 상황에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아이에게 물어봐야 한다. 아이가 절대 그런 일 없다고 잡아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사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엄마가 이미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너를 못 믿는 것은 아니야. 네 생각을 알아보려고 물어본 거야”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좋다. A라는 아이와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관계를 좀 알아본다. “그 친구하고 너하고 좀 마음이 안 좋아서 화가 나고 그럴 때가 있어?”라고 물어준다. 아이가 그렇다고 얘기하면 “그런데 어쩌다가 네가 그 아이 등을 쳤어?”라고 슬쩍 물어본다. ‘때렸다’ 하지 말고 아이가 친구에게 한 구체적인 행동을 말해주는 것이 좋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랬구나. 너는 이유가 있을 거야. 너의 입장에서 말해봐. 엄마가 다 들을 거야”라고 해준다.
아이가 이전 일을 이야기할 수 있다. “너 억울하구나. 속상하고 그러네. 그 친구가 또 그럴까봐 걱정됐어?”라고도 말해준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래서 손이 나간 거야?”라고 묻는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넌 억울하겠지만, 그걸 사람들은 ‘때렸다’고 말해. 억울한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손이 나가면 네가 나중에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그 방법은 쓰면 안 좋은 거야.” 그러면 아이들은 “먼저 때려도요?”라고 묻기도 한다. “아니, 그때는 네가 무조건 맞으면 안 되지. 그런데 오늘도 그 애가 너를 때렸니?”라고 묻는다. 아이가 아니라고 하면 “네가 속상한 것은 알아. 걔는 그 행동을 고쳐야 해. 그렇게 나쁜 행동을 네가 배우면 안 되지. 그런데 오늘 그 애가 너를 먼저 때리지 않았다면 옛날 일을 생각해서 먼저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아이가 억울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번에 그런 일이 있었어. 오늘 잘했네, 잘했어”라고 반응하면 안 된다. 부모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 그릇된 가치를 가르치지 않으려면 내가 부당하게 당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 한다. 내가 많이 맞았으면 상대를 한 대는 때려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어이, 좀 아프네’ 하고 또 때리지 않는다. 이러한 힘의 균형을 이룰 정도로 나를 지켜내는 당당함, 꿋꿋하게 버티는 힘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남을 공격하는 사람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단, 그 친구가 오늘 아이를 때렸다면, 내 아이는 때리든, 그 친구의 손을 막든 밀치든 방어해야 한다. 상대 아이가 먼저 때리거나 괴롭혀서 우리 아이가 대응하다가 밀치게 된 거면 우리 아이를 너무 혼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아이의 마음에 다다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람을 때리는 행동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정당방위를 빼놓고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 이 두 가지 목적을 잊고 사건의 진위만을 따지면서 아이의 자백을 받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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