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피해 직원이 경찰에 고소한 사실이 실시간으로 박 전 시장 측에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중요한 수사 정보가 가해자 쪽에 누설된 것은 공무상비밀누설이라는 범죄행위일 뿐 아니라 엄정하게 지켜져야 할 형사사법 절차를 농단한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 직원이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한 시간은 8일 오후 4시 반경이다. 곧바로 고소인 조사를 시작해 9일 오전 2시 반경 조사가 완료됐다. 박 전 시장이 9일 오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공관을 나선 것으로 미루어 그 이전에 고소당한 사실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소장이 접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박 전 시장 측에 고소 사실이 유출된 것이다.
피해 직원 측은 그제 기자회견에서 “박 전 시장 측에 고소 사실을 알리거나 암시한 적이 없고 수사팀에는 절대적 보안을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대개 가해자와 피해자 둘이서만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사건의 특성상 물증 확보를 위해선 가해자가 대비하기 전에 은밀하고 신속하게 수사가 진행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본격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고소 사실과 고소 내용이 누설되면 가해자 측이 증거인멸에 나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실제로 피해 직원 측은 경찰 조사 당시 박 전 시장이 텔레그램 비밀대화 메시지를 보냈다는 휴대전화의 압수수색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고소장 접수 직후 상급기관인 경찰청 지휘라인에 보고했고, 경찰청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유선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경찰청, 청와대로 이어지는 보고과정에서의 유출 가능성이 야당 측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경찰청과 청와대는 고소 사실을 알려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박 전 시장 측이 다른 경로를 통해 고소당한 사실을 알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사정보 유출은 그 자체로 사건 은폐와 수사 방해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게 아니다. 청와대와 경찰청은 어느 선까지 보고가 이뤄졌으며 박 전 시장 측에 정보 유출이 있었는지 낱낱이 진상을 밝혀야 한다.
피해 직원이 서울시 내부에 여러 차례 도움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는 의혹도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 반드시 관련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서울시의 최고책임자인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은폐하고 방조한 권력형 2차 가해는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서울시의 책무를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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