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층 사람들’[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0일 03시 00분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사태 이후 드러나는 시장실 운영 실태가 충격적이다. 피해자 측 주장에 따르면 시 간부들은 시장의 심기 보좌에 매달렸고 그 도구로 여비서라는 공무원을 활용했다. 여비서에게 시장 낮잠 깨우기나 혈압 측정을 전담시키고 샤워 뒤 속옷 챙기기에 주말 조깅까지…. 명색이 진보라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시장 심기나 챙기고, 피해자의 문제 제기는 모른 체하거나 방조했다는 얘기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심리학에 동조(conformity) 현상이란 게 있다. 인간이 암묵적 집단 압력을 느껴 집단 규범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현상이다. 누가 봐도 답은 명확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틀린 답을 말하면 그 답이 옳다고 믿게 되는 솔로몬 아시의 ‘선분(線分) 실험’이 유명하다. 인간에게는 다른 인간의 힘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잘 선별된 엘리트 집단일수록, 그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할수록 신념과 행동 양식은 서로 닮기 쉽다.

▷주변에 사람이 많으면 책임감이 분산되는 제노비스 신드롬(방관자 효과)도 단서를 준다. 1964년 3월 뉴욕타임스가 대서특필한 키티 제노비스 살인 사건은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새벽 3시경 퇴근하던 28세 여성 제노비스가 따라오던 괴한에게 난자당해 사망했다. 여성은 30여 분에 걸쳐 세 번이나 칼에 찔리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38명에 달했던 목격자들은 모두 “누군가 이미 경찰을 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의 정무라인을 뜻하는 소위 ‘6층 사람들’은 2011년 박 시장 취임 뒤 여당과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기용된 ‘어공’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개개인에게 “어떤 공공조직에서 한 직원이 여성이고 젊고 미모라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느냐”고 묻는다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뛸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다르게 행동했다. 피해자는 성추행 피해를 누차 호소했지만 번번이 묵살당했고, 부서 이동을 요청했으나 “시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6층의 그들은 지금쯤 자각하고 있을까. 눈감고 외면했던 자신들의 행동이 박 시장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가도록 방조한 것일 수도 있음을.

▷6층 사람들 중 지방별정직 27명은 박 시장 사망이 확인된 10일 자동 면직됐고 임순영(젠더특보) 등 몇 명만 임기가 남았다. 이들 대부분이 연락 두절 상태라 한다. 이들이 일말의 책임이라도 느낀다면 진상 규명에 적극 응해야 한다. 만약 심리적 집단 동조 현상 같은 수렁에 빠져 직분을 다하지 못하거나 사태를 은폐로 이끈 잘못이 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서울시장 사태#박원순#여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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