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의 핵심 축으로 ‘그린 뉴딜’을 제시한 정부가 최근 부동산 논란이 커지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방안을 들고나와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도심 녹지를 늘리겠다고 선언하자마자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는 상황이 이어진 탓이다.
14일 정부가 내놓은 그린 뉴딜 3대 분야 8개 추진과제 중 가장 먼저 나오는 분야가 바로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이다. 2025년까지 미세먼지 차단숲 6.3km², 생활 밀착형 숲 216곳, 자녀안심 그린숲 370곳을 조성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도심 내 녹지 조성 이유에 대해 “도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미세먼지를 줄이고 열섬 현상을 완화할 수 있도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뒤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는 부동산 대책 관련 당정협의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해 도심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의 공급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17일에는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이 “이미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알렸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인이 생활권 내에서 누리는 도시림 면적은 1인당 10.07m²다. 생활권 도시림이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녹지공간으로, 그린벨트도 일부 포함된다. 서울의 1인당 생활권 도시림 면적은 4.38m²로 17개 시도 중 가장 작고 또 열악하다. 물론 서울의 주거지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서울 주택보급률은 2018년 95.9%로 감소 추세이고, 20년 이상 된 노후 주택 비중도 45%나 된다. 1인 가구나 수도권 전입 인구는 증가 추세여서 공급 확대를 위한 정부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양립하기 어려운 사인을 동시에 털컥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린 뉴딜 추진 의지에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적어도 녹지 조성과 그린벨트 해제를 어떻게 병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특히 그린벨트 해제는 장기적으로 득실을 따져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면 당장의 주거 문제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그린벨트가 줄여주던 초미세먼지(PM2.5) 고농도 현상과 도심 열섬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울의 그린벨트를 해제하면 도심 풍속이 정체돼 미세먼지 고농도 현상이 악화될 수 있다. 굳이 그린벨트를 없애야 한다면 사라지는 녹지만큼의 대체 녹지를 만든다는 식의 사회적 합의를 담은 중장기 정책이 수반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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