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남편과 한강으로 밤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잠원동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살펴봤더니 건물 입구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 눈 주변에는 눈곱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기력이 없었고, 엄마를 잃어버린 지 제법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잠시 기다렸지만 엄마가 주변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새끼 고양이를 발견한 건물 앞은 무자비한 자동차들이 새끼 고양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갈 수 있는 도로였다. 그대로 두면 곧 죽을 것 같았다. 남편은 일단 집에 데려가자며 새끼 고양이를 자기 품에 안았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홧속인지 모르겠다. 산책하는 동안 우리는 ‘모나’(16세 노묘)의 부재를 걱정했다. 모나는 아직 건강한 편이지만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모나가 아무리 그리워도 다른 털북숭이 친구가 모나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남편이 모나의 부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쓸쓸해하길래 나는 농담조로 말했다. “그럼 유기묘라도 입양할까?” 남편은 아이처럼 좋아했다. 사실 나는 고양이 털이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가려워지고 눈이 퉁퉁 부어서 모나 하나 감당하기도 벅찬데, 남편에게 내 알레르기 증상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었다. 이래서 남편이라고 하나 보다. 남의 편.
그런데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잃은 새끼 고양이를 마주칠 줄이야. 아무리 말이 씨가 된다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이럴 거면 “로또나 당첨되면 좋겠다”고 할걸. 남편은 새끼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자고 했다. 키울 생각은 없지만, 임시 보호하는 동안 간편하게 부를 이름 정도는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했다. 남편 속이 훤히 보였다. 이름을 붙여주면 그 정을 어떻게 떼나. 나는 남편이 새끼 고양이 이름으로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며 계속 성가시게 구는 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구린 네이밍 센스에 나는 나도 모르게 대꾸하고 말았다. 남편은 낚시꾼이 미끼를 문 물고기를 낚아채듯 나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아들을 처음 안았을 때 아무 무게도 느끼지 못했지만 그렇게 무거울 수 없었다며, 아들까지 끌어들이면서 내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남편 몰래 잠잠이를 틈틈이 들여다봤다. 이튿날 잠잠이가 기운을 차렸는지 남편이 차려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또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우리 잠잠이 이제 밥도 잘 먹네.” 남편이 말했다. “뭐라고? ‘우리’ 잠잠이?”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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