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A는 요즘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30대 직장인인 그는 서울 강북의 친정집 근처에 전세를 살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회사, 친정과의 거리를 고려할 때 이 동네를 벗어날 수 없는데 인근에 봐뒀던 20년 된 아파트(전용면적 85m²)도 불과 반 년 사이 2억 원 가까이 올랐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것까지 규제한 6·17부동산대책을 보고 ‘이러다 정말 집을 못 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급히 부동산을 돌아다녔지만 마땅한 매물을 찾을 수 없었다. 가격을 조금씩 올리며 연락을 피하는 집주인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A는 결국 7월을 넘겨 집 사기를 포기했다. A는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집 사기는 일종의 전쟁과 같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주택 매매거래량은 62만878건으로 2006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많았다. 젊은층이 이런 추세를 주도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를 30대가 매입한 거래가 지난해 6월 1048건에서 올해 6월 3601건으로 늘었다. 심지어 20대 이하도 101건에서 412건으로 급증했다.
시장은 이런 거래를 ‘패닉 바잉(panic buying·공황 구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를 그저 비이성적 결정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간 정부 부처가 총동원돼 낸 종합 대책만 7·10대책으로 여섯 번째다. 과거 대책이 나왔을 때 집값은 잠시 거래만 끊기며 주춤했다 거래가 회복되면 어김없이 다시 올랐다. ‘이러다 못 살 수도 있다’는 젊은층의 두려움은 ‘어차피 시장이 이긴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한다.
정부는 3기 신도시 등을 개발해 주택을 공급해줄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하지만 맞벌이가 대부분인 젊은층에게 직장과의 거리는 주거지역 선택의 제1 조건이다. 단순히 출퇴근이 불편해서가 아니라 육아와 직장을 모두 챙기며 최소한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외곽, 임대주택 위주의 공급은 서울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젊은층, 중산층의 내 집 마련 수요를 빨아들이기엔 역부족이다.
상반기에 급증했던 거래량은 하반기에 급감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세율 인상이 본격화하기 전까지 집주인들이 시장을 관망하며 매물을 내놓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거래가 끊기면 한두 건만 높은 가격에 거래돼도 그 가격이 시세로 굳어진다. 그 사이 임대차 3법이 도입되면 전월세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틈새에 낀 무주택 실수요자들만 오르는 집값을 보며 박탈감을 느껴야 한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논란이나 부동산 세율 인상 과정을 보면 과연 정부가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 정책을 짤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두려움은 흔히 분노로 변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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