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팔다리에서 왕성하게 휘두르는 것 외의 의미를 찾고자 하지 않지요. 아마 우리도 팔다리를 좀 더 쓴다면 행복해질 겁니다.”
―윌 듀랜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 중
남편은 일곱 살 아들을 ‘다리미’라고 부른다. 아들은 시종일관 조잘거리고, 내키는 대로 춤추며, 별것도 아닌 일에 깔깔거린다. 그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영화 ‘기생충’의 대사를 따라 하며 “어쩜 구김살이 없어. 대리미네, 대리미” 하다가 생긴 별명이다. 놀이터에 가보면 그런 해맑은 아이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다. 때로는 토라지고 아옹다옹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어른들의 세계에 비하면 그곳은 파라다이스이다. 아이들은 놀이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몸이 붕 떠오르거나 미끄러지는 것이 재미날 뿐이다.
어른들의 삶도 이렇게 단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스러움’은 사회의 한구석에 내 자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시작되었다. 생각이 좀 더 나아가면,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윌 듀랜트는 ‘경험과 감각에서 느껴지는 유쾌함, 그리고 기쁨’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우리는 원래 태어날 때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도대체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놓였다.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부인하려 애쓰면서 비합리적인 신념과 독단적인 확신까지 만들어낸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는 경직된 신념과 확신을 뒤흔드는 사건은 매일 일어난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생각을 멈추고 아이들처럼 팔다리를 더 많이 움직여 보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생생하게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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