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천도 위한 개헌은 갈등 초래… 제2행정수도 내실화가 현실적”[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03시 00분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진보 정권에서 집값을 아무리 눌러도 오히려 더 올랐다”며 그 원인으로 ‘가격 통제에 집중한 것’과 ‘정책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 이건 (집값이 안 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다. 정부가 강력한 가격 억제 정책을 내놔도 안 믿는 것이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진보 정권에서 집값을 아무리 눌러도 오히려 더 올랐다”며 그 원인으로 ‘가격 통제에 집중한 것’과 ‘정책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다? 이건 (집값이 안 떨어진다는) 확실한 증거다. 정부가 강력한 가격 억제 정책을 내놔도 안 믿는 것이다.” 수원=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27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신관 2층 도지사 접견실 앞은 분주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56)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62)의 회동을 취재하는 카메라 기자 20여 명이 좋은 자리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16일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대법원 무죄 취지 판결 이후 이 지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지사 인터뷰는 김 후보와의 회동이 끝난 뒤 시작됐는데 90분간의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비서진이 마무리를 재촉하는 쪽지를 들고 들어왔다.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63)이 오찬을 위해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서울-부산 시장 무공천, 원칙은 맞지만 현실은 다를 수도”
―대법원 판결 후 바빠진 듯하다.

“개별적인 연락들이 많이 오는 건 맞다. 보자는 사람이 많다.”

―20일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무공천 주장을 이틀 만에 ‘의견’과 ‘주장’의 차이를 들어 번복했다. ‘역시 사이다’라고 박수치던 사람들이 ‘김빠진 사이다’라며 실망감을 표시했는데….

“지금도 생각은 똑같다. 정치엔 신뢰가 중요하고, 약속했으면 지키는 게 맞다. 하지만 그건 당위고 현실은 다를 수 있다. 공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엔 엄중한 자기 성찰과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

―지난 대선 때도 번복 논란이 있었다.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이었는데 2016년 12월 언론 인터뷰에선 ‘미국과 협의가 된 사안이니 일방적인 폐기는 불가능하고 무책임하다’고 답했다.

“그땐 이미 일부를 설치한 상태였기 때문에 반대하는 건 맞는데 이미 한 거 뜯어 가라 할 정도까지 우리가 국가 역량이 되느냐, 이건 다른 문제다. 바뀐 현실에서 원칙을 반영한 건데 바뀐 현실은 고려 안 하고 결과만 바뀌었다고 한다.”

―이듬해 3월 중국중앙(CC)TV 인터뷰에선 다시 ‘사드 배치는 원점에서 재검토해 철회해야 한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게(사드 배치) 과연 우리 국가 이익만을 위한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기본소득’에 이어 ‘기본주택’을 제안했다. ‘경기도가 집값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나라의 길을 열어 보겠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집 걱정 없이 살도록 집을 뺏는 정책’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열심히 노력하면 정상적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나라를 원하는 것 아닌가.

“공공택지에 중산층용까지 임대주택을 지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면 평생 벌 돈을 다 투자해 집을 사는 데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나라다. 땅은 좁고 인구가 많으니 가만 놔두면 집값이 전 세계에서 최고로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안 오른다.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방향은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앙-지방-입법 권력 다 차지한 여당, 여유를 가져야”
―집값이 잡히질 않으니 여당이 행정수도 이전 카드를 꺼내들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오래전부터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국민들 상당수가 집값 잡으려고 불쑥 꺼냈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서 부작용이 생겨난다. 갑자기 충청도 땅값이 오르고, 수도권에선 ‘수도를 옮겨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집이 부족한가’ 싶어 (수도권 집값을) 자극한다. 행정수도 이전이 필요하지만 방식은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이해찬 대표는 ‘개헌해서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자’고 제안했다. 천도를 위한 헌법 개정에 반대하나.

“헌법 개정은 정치적 갈등을 초래한다. 때론 전선을 만들고 갈등을 격화시키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민주당이 중앙권력 지방권력 입법권력 다 차지했는데 여유를 가질 필요도 있다. 헌법 개정 이런 걸 들고나오면 대충돌이 발생할 것이다. 수도 전체를 통째 옮기는 힘든 방식보다는 제2행정수도 활성화가 헌법이나 판례에 위배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시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뜻인가.

“세부적인 사항은 나중에 논의해야 하고… 충청도가 적당하다는 건 국민적 합의다. 경기도를 예로 들면 도청이 수원에 있지만 의정부에도 북부 청사가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는데 비중을 바꿔서 일주일에 4, 5일을 북부 청사에 가는 거다. 그러면 실제로 그쪽으로 몰려갈 수밖에 없다.”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가능한 희망사항”
이 지사의 취임 일성은 ‘노동이 존중받는 경기도’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노동국을 신설했다. 최근엔 ‘경기도 비정규직 고용 불안정성 보상을 위한 차등 지급 설계안’을 공개했다. 같은 일을 한다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60% 정도밖에 못 받는다. 똑같은 임금을 받고 있다 쳐도 보수라는 게 꼭 현금만 말하는 게 아니다. 노동 환경과 노동 안정성도 있다. 그것의 가치를 얼마일지 계산해 그만큼 더 높은 보수를 주자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공공기관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다 ‘인국공 사태’가 터졌다. 경기도는 그럴 계획은 없나.

“장기적으로 모두를 정규직화한다는 건 불가능한 희망 사항이다. 노동의 형태가 다양화하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제로화는 불가능하다. 다만 비정규직이어도 정규직보다 손해가 별로 없다면 그렇게 난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아들 둘도 좋은 직장에 가려고 아직 취직을 못 하고 있다. 보고 있으면 답답해 죽겠다.”

“朴시장 비극, 권위적 가부장 문화 안타까운 현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는 형님 아우 하는 사이라고 들었다. 여권 신장을 위해 애써온 사람이 성추행으로 피소된 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자체마다 직장 내 성폭력 방지 대책은 있지만 단체장은 예외다. 성남시장 시절 시장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건가.

“당시엔 한명숙 총리 (뇌물 수수) 재판이 있었다. 성남시장실에 봉투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 받았다는 증거용으로 쓸 일이 있을까 싶어 설치했다. 도지사실엔 일반인들 출입을 막아놓아 CCTV는 없다. 그리고 CCTV 설치가 근본 대책이 되겠나. 박 시장 같은 분이 대체 왜…. 가장 큰 문제는 결국 문화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가 성평등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이 든 남자, 특히 경상도 같은 가부장 문화가 강한 곳, 이런 쪽에서 변화되는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까. 일단 교육과 시스템 정비가 중요한데 단체장들은 거기서 벗어나 있다. 어려운 문제다.”

―책(‘이재명의 굽은 팔’)에 성남시장 시절 ‘여직원에게 커피 타는 일 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지금도 그런가.

“여자라는 이유로 시키면 안 되지만 역할(손님 접대)은 맡을 수 있다. 펜스룰처럼 아예 남자에게만 시키자 하면 그것도 성차별이 된다.”

―성남시장 시절 6·25 참전 용사 등 국가유공자 1만 명에게 연간 60만 원씩 지원했다. 그래서 성남 보훈단체들의 지지도 얻었다고 한 적이 있다. 최근 백선엽 장군 홀대 논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공과 과를 모두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한 것, 매우 중요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6·25전쟁 때) 국가에 기여한 것은 맞지만 그건 공직자로서 월급 받으면서 한 일이다. 난 내가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무를 이행한다고 생각한다.”

“욕설 파문은 털어내기 힘든 오물”
―대법원 판결 후 ‘오물을 뒤집어쓴 상태이기 때문에 털어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뒤집어쓴 오물’ 중 가장 털어내기 힘든 건 무엇인가.

“욕설 사건이다. 패륜, 어머니, 가족 간 있었던 예민한 사연이다. 우리 형님이 어머니한테 욕한 걸 내가 형님한테 ‘이래이래 했다면서’ 하고 물어본 건데 내가 욕한 걸로 됐다. 일부 폭언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녹음을 당했다는 거다. 디지털 세상의 비정함이다. 설명도 구차하다. 남들은 기품이 있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할 말 없다. 그 생생한 음성은 무한 복제돼 계속 유포되니 털어내기 어렵겠지.”

―소년공으로 일하다 다쳐 팔이 굽었다. 중고교 과정도 검정고시로 마쳤다. 역설적으로 굽은 팔, 정규 교육의 공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있을까.

“모든 나쁜 일엔 좋은 점도 있다. 팔이 굽어 아프고 불편하지만 그 덕분에 군대 안 갔다. 소외된 사람들의 어려움도 잘 이해하게 됐다. 학교 못 다닌 것, 아쉽지만 그 속에서 의지라는 게 생겨났고 이겨냈을 때 자신감도 생겼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또 기회가 오는구나’ 생각한다. 나에 대한 온갖 음해들 또는 왜곡들이 있다. 그것도 좋은 측면이 있다. 정치인들에겐 자신의 부고(訃告) 기사 아니면 다 좋다지 않나.”

―중국 무협지에 나오는 ‘만독불침(萬毒不侵·어떤 독에도 죽지 않는 경지)’에 이른 건가. 그 어려움들을 자초했다는 생각은 안 드나.

“자초한 것이 많다. 나쁜 짓을 했다는 게 아니라 내가 그 길을 갔기 때문에 공격당하는 걸 각오했다는 뜻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갈 거다. 난 등산을 가도 정규 코스로 가는 것 재미없다. 더 힘들고 까다로운 비정규 코스로 간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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