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가 재확인시켜 준 미래통합당의 한계[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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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전향 논란으로 또 ‘보수 꼴통’ 프레임
세상에 비칠 모습까지 바꿔야 진짜 변화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이 다시 한번 이슈의 중심에 섰다. 등원 전에는 서울 강남갑 공천을 놓고, 당선된 뒤에는 김정은 사망설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이번에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무대였다. 전대협 초대 의장인 이 후보자가 주사파에서 ‘사상 전향’했느냐는 질의를 주도하면서다.

‘사상 전향’ 질의를 놓고 여야 간 신경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선 탈북자인 태 의원을 겨냥해 ‘민주주의가 아직 낯선 것 아니냐’고 했고, 통합당에선 공직 후보자에 대한 정당한 질문을 왜 색깔론으로 몰아가느냐는 ‘역(逆)색깔론’을 폈다. 양당 모두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 의원이 주도한 ‘사상 전향’ 질의 논란을 선거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마디로 4월 총선에서 폭망했던 통합당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 전략 미스라고 필자는 본다.

슈퍼 여당으로 거듭난 민주당은 내년 재·보선, 후년 대선에서 집토끼 지키기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총선에서 180석을 얻었는데 굳이 보수 진영으로 표를 더 확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지금처럼 진보, 범중도 진영만 차분히 지켜도 된다. 이인영 청문회 전후 보여준 민주당의 반응, 다시 말해 통합당을 ‘보수 꼴통’으로 몰아가는 프레임은 총선 때 표를 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

반면 통합당은 또 폭망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지지층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 새로 개척해야 할 유권자층은 중도와 민주당에서 실망한 일부 진보, 그리고 2030세대다. 이들의 이탈을 유도하려면 이들의 이슈와 어젠다를 꺼내야 한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저출산 문제, 기본소득제, 부동산 등에 집중하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태영호가 주도한 ‘사상 전향’ 프레임은 총선에서 통합당을 지지했던 장년층 등 콘크리트 지지층이 주로 환호하는 이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 끌어와야 할 유권자에게 어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멀어지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다가가려면 같은 주제라도 이 후보자의 대북 구상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얼마나 위험하고 몽상적인지 세련되게 지적했어야 했다.

통합당에선 “사상 검증만 한 게 아니라 다른 질문도 했다”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정치의 세계에선 자신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보다 밖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정치 IQ’가 좋은 사람들은 이런 정치의 속성을 잘 아는데, 학생 시절부터 정치 프로파간다를 연마한 진보 진영에 비해 통합당이 너무나 취약한 대목이다. 이인영 청문회도 딱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은 ‘통합당은 역시 보수 꼴통’이라는 명제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태영호의 질의를 기억할 것이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오가는 요즘은 더더욱 결정적 상징과 이미지로 전체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가 심판당했다는 21대 총선이 벌써 100일이 지났다. 그사이 통합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으려 어떤 노력을 했나. 소수당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힘겹게 투쟁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통합당이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정치의 팔 할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했으면 싶다. 실제로 변했다는 걸 유권자들이 알도록 해서 표를 얻어야 정치에선 ‘진짜 변화’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데 자기만 변했고 개과천선했다는 주장만큼 정치에서 허망한 것도 없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미래통합당의 한계#태영호 의원#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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