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책임윤리 심정윤리, 그리고 사악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9일 03시 00분


문재인 정권과 친여세력의 당파성, 심정윤리에 휘둘려온 한국 정치
책임윤리로 가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악한 당파적 정치로 퇴행
정상국가가 서서히 파괴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1919년 독일에서 대학자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유명한 뮌헨대 강연을 통해 심정윤리(Gesinnungsethik)와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를 구별했다. 심정윤리는 사람의 의도만을 따져 윤리적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책임윤리는 의도치 않은 결과의 발생까지 고려해서 의도한 결과를 이루려 할 때 윤리적이라고 판단한다.

베버는 카를 마르크스가 창시자 중 하나인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가까운 지식인이었다. 베버의 강연은 2년 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SPD에서 갈라져 나와 독일공산당(KPD)을 조직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죽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는 로자가 심정윤리로는 윤리적이었지만 책임윤리로는 윤리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버의 심정윤리와 책임윤리의 구별은 SPD의 급진화를 막고 책임정당으로 만드는 계기가 됐다.

베버가 강연을 하던 해 한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임시정부는 출범 때부터 신채호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심정윤리적 공격에 시달려 해체 위기까지 갔다. 임시정부 말기 좌우합작 시기에는 무정부주의적 의열단원으로 시작해 저우언라이 등 중국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세력화한 김원봉의 권력 찬탈 시도를 견제해야 했다.

이들에 맞서 임시정부의 명맥을 이어간 책임윤리의 계보는 이승만-안창호-김구였다. 해방정국에서 김구는 1948년 초까지만 해도 유엔 감시하의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불가피하다고 여길 정도로 현실적인 사고를 견지했다. 그러다 돌변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어쨌든 그는 죽더라도 38선을 베고 죽겠다고 나옴으로써 김일성에게 이용당하고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재촉했다.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부르지 않는 건 자유다. 그러나 국부가 있다면 그 사람은 이승만일 수밖에 없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유라시아를 덮은 붉은 물결 끝자락에 보일 듯 말 듯 남은 작고 푸른 점은 없었다. 이승만을 국부로 삼기 싫다면 그냥 국부는 없는 것이다. 이승만 대신 김구를 국부로 삼는다는 것은 정(正)이 될 수 없는 반(反)을, 정과의 통합을 통해 합(合)으로만 간직될 수 있는 반을 정이라고 부르는 빈약한 논리이고 역사인식이다.

우리가 심정윤리적 정치인들에게 갖는 감정은 안타까움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여전히 김구를 존경한다. 독일에서 로자의 인기는 높다. 그것은 역사에서 심정윤리적으로 행동하다가 불가피한 패배를 당한 사람을 향한 배려와 같은 것이다. 베버는 로자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주려 했지만 그 전에 레닌 같은 음모적이고 당파적인 공산주의자로부터 로자를 구별했다. 김구에 대한 존경은 김구였다면 더 성공한 역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분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진행에 대한 아쉬움을 그를 통해 표현하면서 미래를 향해 더 큰 분발을 다짐하고 촉구하는 것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으로 역사를 배운 ‘86 운동권’ 정치인들은 사실 김구를 국부로 여기지도 않는다. 심정윤리의 영웅을 내세우는 것은 음모적이고 당파적인 정치인들의 흔한 수법이다. 주사파는 김일성이라는 볼드모트의 이름을 댈 수 없으니 그 대용으로 김구를 둘러대는 것이고 주사파임을 부인하는 자는 여운형이든 박헌영이든 김구이든, 이승만만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는 것이다.

심정윤리든 책임윤리든 둘 다 윤리적 동기가 그 속에 들어 있다. 그 반대편에 당파성이 자리 잡고 있다. 윤리는 공정에 바탕을 둔다. 당파성은 공정이라는 최소한의 윤리적 보편성을 무시한다. 조국 박원순 사태가 보여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울산시장 선거공작 수사에 이어 윤미향 정의연 수사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내로남불은 가십의 용어가 아니라 이 정권의 본질을 표현하는 용어가 되고 있다. 정치가 심정윤리에서 책임윤리로 발전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악한 당파성으로 퇴행하고 있다.

앞으로는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신계급이 탄생할 것이다. 반대로 정권의 반대자는 사소한 트집을 잡혀 이미 감옥에 가고 있다. 곧 출범할 공수처는 레닌의 체카(KGB의 전신)가 될 것이다. 추미애는 정상적인 형사사법 체계를 파괴하면서 그 길을 예비하고 있다. 이것이 검찰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전말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문재인 정권#책임윤리#심정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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