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巨與의 입법 폭주, 독재시절에도 엄두 못 낸 국회 농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0일 00시 00분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그제 기획재정, 국토교통,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을 배제한 채 부동산 관련법 등 13개 법안을 단독 처리한 데 이어 어제도 법사위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처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의사일정 협의도 하지 않았다는 야당의 항변은 묵살됐다. 거여(巨與)가 야당 몫 법사위원장을 빼앗고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한 것이 이런 폭주를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모양이다.

여당은 의사진행 절차를 규정한 국회법을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취급하고 있다. 상임위 안건 심사를 위해 대체토론과 축조심사, 찬반토론을 거친 뒤 소위원회에 회부하도록 돼 있는 국회법 절차는 강제조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했다. 몇몇 상임위에선 예정된 소관 부처의 업무 보고도 생략됐다. 국토교통위에서 부동산법 6건 의결에 걸린 시간은 불과 60분이었다.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법안은 국회 예산정책처가 비용을 추계하도록 돼 있는 절차마저도 외면했다.

이러다 보니 어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도 않았는데 국회 전산망에 여당이 처리하려던 안건들이 처리됐다고 뜨는 볼썽사나운 일도 벌어졌다. 사전에 만들어놓은 도상(圖上)계획을 군사작전하듯 실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일이다. 여당과 국회사무처까지 한 몸처럼 움직였음이 드러났는데도 여당은 “단순 행정 실수”라면서 부끄러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최소한의 토론조차 없이 처리된 부동산 관련 법안들은 전 국민의 실생활에 직결된 내용이다. 세부 조항 한 구절이라도 허술하면 현실에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빚어 피해 보는 국민이 속출할 수 있다. 민생 및 국가 조세제도를 바꾸는 법안들을 이처럼 졸속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여당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감과 신중함마저 저버린 행태다.

국회 운영은 마지막까지 여야가 의견을 조정하면서 각자 입장을 알리고 그래도 안 되면 표결로 마무리하는 것이 국회법 정신이다. 다수결 원칙을 따르더라도 그 과정과 절차를 지키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여당이 이런 최소한의 절차까지 무시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폭주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입법 속도전을 무조건 이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국회법 절차마저 걷어차 버린 것이다. 여당 스스로 삼권분립의 한 축인 국회를 청와대 하명(下命)을 집행하는 ‘청와대 거수기’나 ‘통법부’로 전락시킨 것이다.

여당이 이런 입법 폭주를 4·15총선에서 176석을 만들어 준 ‘국민의 명령’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궤변이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은 초당적으로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라고 표를 몰아준 덕분이지, 야당과의 협치를 깨고 제 마음대로 국회를 쥐락펴락할 권한을 준 것은 아닐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만 따져 국회 운영을 농단하는 퇴행적 행태는 4·15총선 민의를 모독하는 것이자 민심 이반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거여#입법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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