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청 여자핸드볼 선수단 감독이 술 시중을 강요하고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 다음 날,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이야기가 들렸다. 용기를 갖고 내부 고발한 선수들이 ‘2차 피해’를 걱정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보호를 받아야 할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의 눈치를 보는 일이 벌어졌다. 성추행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29일 오전 여자핸드볼 선수단이 진정서를 대구시체육회에 제출했다가 반려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생겼다. 선수들 사이에서 팀 해체, 실업자 운운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감독이 복귀해 고발한 선수를 나가게 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피해를 진정서에 밝히는 순간 스스로 고발자임을 알리는 꼴이라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대구시 관계자는 “진정서가 신뢰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작성돼 접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피해 사실은 매우 구체적이다. 5월 15일 합숙소에서 오후 4시경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경까지 10시간여 동안 술자리를 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감독 등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생활 방역이 강화된 기간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수들 증언은 4월에만 4차례. 길어진 술자리에서는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도 있었다. 격려하겠다고 참석했던 외부 손님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고, 막아서야 할 감독은 술에 취해 술을 따르고 분위기를 띄우라고 했다. ‘접대부가 된 것 같았다’는 선수들의 증언이 모든 것을 말해줬다.
피해 선수들은 비슷한 성추행 사건 때처럼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왜 이제 와서 고발하나’ ‘신상을 공개하고 증거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몸서리를 친다. 일각에선 오히려 ‘그게 성추행이냐’란 말까지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났지만 이번 사건은 ‘권력형 성범죄’의 전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아마 처음에는 가볍게 농담하고 운동을 열심히 잘하라는 친밀감의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선수들이 수치심을 느꼈고,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을 것이다. 점점 성추행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하소연할 길이 없어졌다. 절대적 권한을 가진 감독에게 함부로 거부 의사를 표했다간 어떠한 불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다. 합숙 생활의 부적응자로 찍히면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힘들다.
대구시가 선수단의 ‘2차 피해’를 차단하기 위해 외부 여성 인권 전문가로 조사단을 꾸리기로 결정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감독을 직위 해제하고 코치 등이 선수들을 접촉하지 못하도록 한 것도 신속했다. 이제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철저하게 조사할 일만 남았다. 운동에 전념해야 할 선수들이 성 수치심 때문에 밤새 펑펑 우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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