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고통을 그린 화가[이은화의 미술시간]〈122〉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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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 1896년경.
에드가르 드가 ‘머리 빗기’, 1896년경.
머리 빗기는 매우 사적인 영역의 일상이다. 머리를 빗겨 주는 것도 친밀한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한 에드가르 드가는 머리 빗는 여자도 종종 그렸다. 그 주제를 가장 대담하게 다룬 게 바로 이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 속 여성의 모습이 왠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인다. 화가는 왜 이런 모습을 그렸을까?

전체적으로 붉게 처리된 그림 속 배경은 19세기 파리의 어느 가정집 실내다. 연분홍 블라우스를 입은 하녀가 주인 여자의 긴 머리를 빗겨 주고 있다. 임신부로 보이는 주인은 강한 빗질에 이끌려 몸이 뒤로 젖혀진 채 고통스럽다는 듯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두피를 누르고 있다. “아야, 아파. 좀 살살 빗겨 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단 한 번도 긴 머리를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상황이자 고통이다.

드가는 여자들이 어떻게 머리카락을 잡고 빗는지, 잘 빗기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모델들을 통해 여자들의 사적이고 은밀한 부분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느낌을 알기 위해 모델의 머리를 몇 시간씩 빗겨 주기도 했다. “그분은 이상한 사람이에요. 모델을 서는 네 시간 내내 내 머리만 빗겨 주거든요.” 드가의 모델이 한 말이다. 당시 다른 남성 화가들과 달리 드가는 누드화를 그릴 때도 모델과 ‘아무 일’이 없었다. 오직 그림에만 집중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그가 여성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여성 모델들이 고통과 싸우는 것을 보는 걸 즐겼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엔 관능미 넘치는 매혹적인 여성이 아니라 피곤하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일상 속 여성들이 많다.

이 그림 역시 긴 머리 임신부의 일상 속 불편과 고통을 담고 있다. 하녀의 머리와 팔에서 주인의 몸을 따라 이어진 대각선은 그 고통의 흐름을 나타낸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건 분명 피처럼 붉은색일 터. 그림 전체가 온통 붉은색인 이유다. 끝내 미완성으로 남은 이 그림은 드가 사후, 앙리 마티스가 구입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에드가르 드가#머리 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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