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 비대화와 권력예속 심화시킬 ‘무늬만 자치경찰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일 00시 00분


당정청은 그제 마련한 ‘권력기관 개혁방안’에서 기존 경찰 업무 중 △외사·보안·정보는 국가사무로 분류해 경찰청장이 △형사·수사 사건은 신설되는 국가수사본부장이 △생활안전·교통·여성·아동 사건 등은 자치경찰 사무로 분류해 시도지사 소속으로 신설되는 시도자치경찰위원회가 지휘감독을 맡도록 했다. 경찰이 검찰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넘겨받는 데도 국가수사본부장의 독립성을 보장할 방안이 제시되지 않아 비대해진 경찰권 남용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경찰권 분산마저 ‘무늬만 자치경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자치경찰제는 2006년 7월부터 제주에서 시범운영됐으나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조차 최소한의 수사권도 갖지 못해 선진국 기준으로는 자치경찰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는 비판이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방범대 수준의 자치경찰제를 그대로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당정청의 개혁방안이다.

당정청의 개혁방안은 실은 제주에서 시범운영되는 것만도 못하다. 제주만 하더라도 서귀포에 자치경찰대 건물이 따로 있으나 전국으로 확대되는 자치경찰제에서는 기존 경찰서에 국가경찰과 지방경찰이 함께 근무한다. 게다가 국가경찰에서 자치경찰로 업무가 바뀔 경찰은 국가공무원 신분도 유지한다. 국가경찰 중 36%인 4만3000명 정도가 자치경찰로 바뀔 상황에서 이들이 지방공무원으로 신분이 변할 것에 반발하자 요구를 그대로 받아준 것이다. 국가공무원 신분을 갖고 국가경찰과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자치경찰이 자치경찰로서의 정체성을 얼마나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찰청장은 경찰위원회의 동의를 받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임명 제청하도록 돼 있지만 경찰위원회의 운영은 독립적이지 못하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도 경찰위원회처럼 운영된다면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이 대통령에게 예속되듯 시도지사에 예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당정청은 경찰위원회와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독립성 확보 방안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수사권이 검찰에 더 많이 있든, 경찰에 더 많이 있든 그 행사가 더 공정해지는 게 중요하다. 비대해질 경찰권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국가수사본부와 실질적 자치경찰제로 분산시키지 않으면 검경 수사권 조정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찰서에서 교통계와 여성청소년계 정도만 따로 분류해 자치경찰이라고 부르는 코미디 같은 개혁은 없어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방안#자치경찰제#수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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