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치유의 과정과 유사하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서두를 수 없다는 말이다.’
―앨런 러스브리저 ‘다시, 피아노’
잠깐의 노력과 반짝 운으로 큰 성과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시간과 공을 들여야 윤이 나고 의미가 쌓여 가는 것들에 마음이 간다. 그게 ‘진짜’임을 점차 깨닫는 중이다. 책을 읽는다거나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 꾸준히 영혼을 쏟아부어야 가능한 행위들.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는 “인간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인다네, 왜냐하면 나도 인간이기에”라고 썼는데, 이 문장은 늘 내 마음을 흔든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편집국장이 전쟁 같은 일상에서, 매일 20분씩 짬을 내 쇼팽의 ‘발라드 1번’에 도전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도 혀를 내두른다는 난곡(難曲) 아닌가. 굵직한 보도를 총괄하는 편집국장의 일상에 고급 만찬이나 골프 회동이 아닌 피아노가 등장한다. 매일 아침 피아노 연습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피아노 연습은 ‘치유의 과정’이다. 그렇게 1년을 퍼부어 결국 쇼팽 발라드 1번이라는 고지에 이른다. 당장 성과를 낼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하고,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대체할 수 없는 온전한 내 노력의 결과물이라 의미가 있다.
책을 읽는 행위도 피아노 연습과 유사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은 없다. 그 시간에 돈 냄새를 좇는 게 득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독서는 영혼의 치유다.
정혜윤 작가는 ‘아무튼, 메모’라는 책에 “지옥 같은 세상에서 지옥 같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라”는 마술적 주문을 품고 산다고 썼다. 보르헤스는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라고 말했다.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는 능력은 ‘진짜’를 곁에 두는 노력과 닮아 있다. 그 노력 덕에 세상이 덜 지옥 같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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