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든 미국이든 최근 여론 주도층 사이에서는 자기주장에 대한 지나친 확신과 자신과 반대되는 의견을 갖는 사람에 대한 인격 모독에 가까운 공격적 성향이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과학자라는 직업은 전문 분야에 따라 연구 방법이나 지식 체계에 많은 차이를 지닌다. 하지만 자신의 특정 사고 체계를 개발하여 이를 발표하고 동료 과학자들과의 비판적 토론 과정을 통해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만은 동일하다. 과학자들도 사람인지라 자신의 생각에 비판적인 의견을 들으면 불끈 화가 나기 마련이고 고성이 오가는 토의가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토의가 건설적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과학이 근본적으로 갖는 ‘내 생각은 그것이 틀리다고 밝혀질 때까지만 맞다’라는 신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과학 발전의 역사를 보면 한 시대를 지배했던 과학적 진리들이 새로운 발견으로 뒤집어지는 일이 흔하며 과학자들은 기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의 틀로 자연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며 틀렸다고 밝혀졌을 때 이를 인정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이 사회 문제 해결의 시작이고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사회복지학자 브레네 브라운의 2010년 테드(TED) 강연을 4800만 명 이상이 시청했을 정도로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는 솔직해지고 싶은 본능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든 깨끗한 물 또는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지만 실제 정책을 수행하고 이행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이해가 상충되는 집단 간의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메리 니컬스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대기 환경 규제를 수립하고 이행하기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대기자원위원회 의장을 1975∼1982년 지낸 뒤 2007년부터 다시 부임해 현재까지 직을 수행하고 있다. 환경전문기자 배스 가디너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새로운 정책 입안 과정에 겪었던 수많은 일화들을 소개한다. 대형 트럭에 대한 배출가스 규제 법안 청문회 건물을 막아서고 시위하던 수많은 트럭들, 오토바이 환경 규제 법안 회의장에 나타난 가죽점퍼를 입은 수많은 바이커들, 세탁소에서 쓰는 드라이클리닝 용매 규제를 위한 청문회장에는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세탁업자들이 버스를 대절해 시위를 하러 나타났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그녀는 수많은 정책을 법으로 입안하여 이를 집행했고 그 결과 캘리포니아의 주요 대기오염 물질 수준은 그녀가 의장직을 처음 시작했던 시절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 정도로 개선되었다.
환경 규제를 극단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규제로 일자리를 죽이는 무법자’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협상 테이블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주요 산업계 인사들은 니컬스 의장은 언제나 규제 대상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규제의 큰 그림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늘 타협했다며 존경을 표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환경운동가 사이에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환경 규제의 토머스 에디슨’이라는 극찬과 ‘선천적인 타협주의자’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고 가디너 기자는 전한다. 하지만 상대의 의견을 듣고 끝없이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점검하고 수정해 나가는 유연성이 있었기에 그녀는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자리에서 효과적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특유의 유연성으로 니컬스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자리를 차지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인정하며 더 나아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기꺼이 진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약점을 남들에게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위험한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브레네 브라운은 진정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이렇게 자신을 솔직히 타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며 이러한 가식 없는 삶의 자세가 개인의 진정한 행복을 가져올 수 있음을 연구를 통해 밝혔다. 이러한 건강한 개인들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 건전한 토의를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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