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정치가 적폐다[동아 시론/이현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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巨與, 적폐청산 프레임으로 개혁 추진… 국회 가치는 효율보다 숙의에 있지만
떼거리 與, 무능한 野로 절망 가시화… 다양한 목소리 담는 국회로 돌아가야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겠다고 천명했을 때, 여야 합의를 기초로 한 정상적인 국회 운영을 기대했다. 지금 같은 수적 우위를 내세워 폭주하는 국회를 상상하지 않았다. 국회 초반부터 실질적 절차정당성이 형해화되고 정치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 국회 발전은커녕 국회 역사에 나쁜 선례들이 쌓여가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제1야당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통과시킨 민주당의 자신감이 이번 국회에서 임대차 관련법들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원동력이 된 모양이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되짚어 보면 민주당이 원 구성에서 왜 그토록 법사위원장직에 매달렸는지 새삼 이해가 된다. 민주당은 국회 개원 전부터 이미 일방적 국회 운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나 보다.

민주당의 국정 의지는 ‘적폐청산’으로 요약된다. 정부와 여당은 촛불정부를 자임하면서 적폐청산의 프레임을 검찰 개혁은 물론이고 부동산 정책에도 이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현재 부동산 가격의 급등이 이명박과 박근혜 보수정권의 책임이며 비정상의 부동산시장을 정상으로 돌리는 개혁이 금번의 임대차 관련법 개정이라고 주장한다. 적폐청산은 만능키가 되어 버렸다. 이 논리에 따르면 미래통합당의 반대는 적폐의 저항일 따름이며, 민주당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보수세력과 합의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상임위 위원장직을 민주당이 독식한 것이 소위 일하는 국회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내심 여긴다면 21대 국회는 절망적이다.

원하는 법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것이 효율적 국회 운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사고다. 국회에서는 효율성이 아니라 숙의를 거친 대표성이 더 높은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합의가 결여된 일방적 법안 처리가 가져온 부작용을 지난 총선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위성정당이라는 해괴한 정당의 출현은 한국 선거사에 부끄러운 기록이다.

충분한 논의를 결여한 독단적 법률 제정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또 다른 법률을 제정하는 법률만능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을 예상하듯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임대차법이 충분치 않으면 더 강한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설익은 법률로 인한 혼란과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가장 나쁜 선례는 상임위원회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생략하고 바로 전체 위원회에서 법안을 의결하고 본회의에 회부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법안의 내용을 상세히 검토하고 수정하는 기구가 법안소위다. 그런데 임대차 관련 법안들을 처리하면서 기획재정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그리고 행정안전위원회 모두에서 법안소위의 심의가 생략되었다. 그리고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토론 없이 민주당 의원들만이 표결에 참여하였다. 앞으로 이러한 선례가 관행으로 굳어질 것이 우려된다.

국회 임기로부터 48일이나 지각 개원하고 겨우 20일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향후 국회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이번 국회 출범 때부터 정권 재창출을 공공연히 외쳐대는 176석의 거대 여당에 국회 권한 중 하나인 행정부 견제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결속이 강할수록 야당이 소외되고 행정부에 충성하는 일방적 국회 운영은 필연적이다.

부동산 정책에서 보듯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부와 여당은 무오류의 소신을 가진 듯하다. 민주당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획득했다는 것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운영할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라는 논리에 함몰되어 있는 듯하다. 친여 성향의 정의당마저 민주당의 국회 운영에 우려를 표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비관적 전망을 더하는 것이 통합당의 무기력이다. 의석수의 부족만을 개탄할 뿐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정국의 반전을 꾀할 만한 대안 제시의 역량을 도무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의 외면에서 벗어나려면 민주당을 필두로 국회 전체의 각성이 필요하다. 먼저 국회는 정당별 의석수라는 양적 원칙이 모든 것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통합당의 103석은 국민이 선출한 대표이며 경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국회에서 다수결 원칙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국회는 다양한 집단의 불편한 동거이므로 다양성 존중의 정치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진영논리 기반의 떼거리 정치가 적폐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치#적폐#더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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