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관한 내 모든 첫 경험은 그 어떤 첫 경험보다 강렬하며 진실하다. 그래서 어떤 삶도, 죽음도 앗아가지 못할 것만 같다.
처음 워크맨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형이 그날 막 사온 삼성 ‘마이마이’에 카세트를 넣고 틀어준 노래는 이탈리아 가수 가제보의 ‘I Like Chopin’. 신시사이저의 16분 음표 분산화음이 스테레오로 좌우 고막을 간질였는데 마치 쏟아지는 음표가 작은방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통통 튀어 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감각의 신세계다…!’
처음 나만의 워크맨을 들고 동네에 산책을 나간 날도 생생하다. 라디오헤드의 ‘Creep’…. 명멸하는 기타의 트레몰로 효과, 보컬 톰 요크의 푸른색 캐러멜 같은 목소리를 꿰뚫고 조니 그린우드의 자학적 기타 굉음이 번쩍이던 순간, 그 벽력같은 소리는 나의 시선을 따라 아파트 단지의 벽에 부딪치고 지나가는 버스를 뒤흔들며 나만의 판타지 세상에 축복의 재앙처럼 들이닥쳤다.
#1. 아이리버가 최근, 무려 4년 만에 새 MP3 플레이어를 출시했다. 정확히는 예전에 나왔던 ‘T70’의 시즌2 모델이다. 충격적 뉴스. LTE와 5G 환경에서 스마트폰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무선 이어폰을 통해 고막에 음악을 콸콸 쏟아붓는 시대에 MP3 플레이어라니…. 여의도 한복판에 파르테논 신전을 짓겠다는 말처럼 다가왔다. 아이리버를 만드는 드림어스컴퍼니 관계자에게 물어봤다. 정작 그는 담담하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데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 어학 공부용으로 쓰는 학생들의 수요가 있어요. 모델당 연간 1만 대 정도는 꾸준히 생산하고 있는걸요.”
#2. 다시 플래시백. 워크맨이나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며 세상을 나만의 소리로 채색해 가던 내게, MP3 플레이어의 탄생은 하늘이 내린 새로운 축복이었다. 겨우 검지손가락만 한 ‘엠피삼’을 청바지 앞주머니에 쏙 집어넣고 거리를 걸으면 이 세상 음악을 모두 소유한 듯 배가 두둑해졌다.
#3. 이 지면을 빌려 이제야 자수한다. 그 당시 음악 마니아들이 그랬듯 불법 음원 공유는 내게도 필수 코스였다. 밤마다 이름 모를 전 세계 유저와 P2P 플랫폼으로 연결돼 이름만 들어본 서구의 명반들을 남몰래 PC로 내려받았다. 플랫폼은 바다나 은하계의 이름을 달고 성행했다. 그 어두운 축복은 가히 자유롭고 광대한 우주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4. 친구 M이 하루는 ‘은하계’를 통해 일을 냈다. 프랑스 현대시 수업을 듣던 때였다. 한 편의 시를 학생이 직접 해설해 발표하는 수업시간에 M이 문제의 파일을 재생했던 것이다. M이 전날 밤 은하계를 뒤지고 뒤져 찾아낸, 20세기 초 시인 자신의 시낭송 육성을 담은 MP3 파일. 강의실은 뒤집어졌다. 꼬장꼬장한 노교수가 수십 년간 책장 가득 쌓아올린 권위는 한순간에 작아졌다. 시인의 목소리는 칠판 위 백묵과 교재 위 빨간 줄의 두꺼운 매트릭스를 괴멸해버렸다.
#5. LP와 카세트가 요즘 뜨겁다. 오아시스레코드의 1970, 80년대 명반들이 지난달부터 LP로 재발매되고 있다. 요즘 그룹 ‘싹쓰리’마저 앨범을 카세트테이프로 만들어 판다. 양준일의 1집과 2집까지 LP로 재발매됐다. 가격도 만만치 않다. 신품 카세트는 2만 원에 육박하고 LP는 4만∼5만 원을 호가한다. 사서 비닐조차 안 뜯더라도, 정작 음악은 음원 사이트와 에어팟 프로로 듣더라도 살 사람은 산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희귀 중고 음반은 때로 수십만 원에 거래된다. 이러니 중고음반 판매상은 지방의 폐기물 재활용센터를 돌며 버려진 옛 카세트와 LP를 싼값에 매입해 깨끗이 정비한 뒤 매장 진열대에 만만찮은 가격표를 붙여 올린다.
#6. 옛 연인의 부질없는 추억처럼 내다버린 카세트테이프 무더기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이제야 가슴을 친다. 지금 내게 ‘있는’ 건 무엇일까. 무형의 현재를 가만히 손으로 잡아본다. 미래에는 무엇이 없어지고 무엇이 부활할까. 손목에 이식한 출입카드처럼, 언젠가 세상 모든 음악이 그저 인간의 뇌 안에서 재생될 날이 올 것 같다. 아마 고막을 통할 필요 없이. 10년쯤 뒤, 그날엔 칼럼을 이렇게 시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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