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4년 여름밤 북한 황해도. 칠흑 같은 강기슭에서 한설송(가명) 씨는 허리춤에 자전거 튜브 3개를 꽁꽁 동여맸다. 강물을 타고 바다로 나가 한국 땅에 닿는 게 목표였다. 북한군에게 들킬까 봐 물 위로 얼굴만 내놓고 떠내려 오기를 6시간. 목숨을 포기할 때쯤 “여기는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방송이 귓전에 들렸다. 환상을 갖고 정착한 서울은 화려하지만 한 씨에겐 외로운 도시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라는 좌절감 속에 목숨을 걸었던 탈북 과정이 머리에 스쳐 갔다.
#2. 북한에서는 시키는 일만 했던 임은희(가명) 씨. 정착 교육을 마치고 나온 한국의 구직 시장은 그에게 너무 차가웠다. 구인 포스터를 보고 들어간 가게 사장의 “연락 주겠다”는 말을 믿었지만 감감무소식이 수차례 반복됐다. 일을 구하지 못하자 그의 신변 보호를 담당하는 경찰이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고 해 고마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연락해보니 남성들을 상대해야 하는 술집이었다.
지난달 강화도를 통해 재입북한 탈북민 김모 씨(24)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김 씨가 탈북한 방법 그대로 다시 월북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성폭행 혐의를 받았다는 이유로 재입북을 선택한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많다.
통일부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재입북한 탈북민은 28명이다. 북한 매체를 통해 확인된 수치다.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민 사회에서는 “이번에 누가 다시 북한에 갔다더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퍼진다. 현재 정부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는 탈북민은 약 900명에 달한다.
탈북민들은 한국에 온 초기 5년이 정착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때를 놓치면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이 5년간 ‘언어만 통하는 외국’인 한국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익숙지 않은 문화로 주변과 마찰을 겪거나 범죄에 연루되기도 한다. 저임금 노동으로 생활고를 겪는 이들도 많다. 이번에 재입북한 김 씨도 이 시기를 넘기지 못하고 3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갔다.
○ 하나원 교육, 현실과 괴리
골든타임의 첫 단추는 하나원이다. 탈북민들은 하나원에서 처음 한국 사회를 배운다. 한국으로 와 약 3개월 동안 ‘임시 보호’ 속에 조사를 받은 뒤 하나원에 입소하게 된다. 12주, 400시간 동안 합숙하며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한 기초 교육을 받는다.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사회 이해를 위한 수업을 듣고 직업 체험 훈련을 한다.
얼핏 잘 짜인 ‘속성 수업’처럼 보이지만 “큰 도움이 안 됐다”고 말하는 탈북민이 많다. 2018년 말 하나원에서 출소한 이혜주(가명) 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앉혀 놓고 주입 교육을 하니 내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졌다”고 했다. 지하철도 타보고, 직접 물건도 사 보면서 몸으로 한국을 느껴야 하지만 하나원에 갇혀 이론을 배우느라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
임은희 씨는 하나원에서 나온 다음이 더 막막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하나원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냐’고 묻는데 무슨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네일아트나 제빵 같은 직업교육이 있었지만 실제론 큰 도움이 안 됐다”고 했다. 구직 활동을 해본 적이 없던 임 씨는 이력서도 없이 ‘직원 구함’이라고 쓰인 가게마다 들어가 “사람 구하냐”고 물었다. 완곡한 거절이었던 “연락 주겠다”던 말만 믿고 다시 찾아가 “왜 연락을 안 주냐”고 따져 물었다. 그만큼 한국의 구직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탈북민들은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린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탈북민들의 월평균 소득은 204만7000원. 국민 월평균 소득(264만3000원)의 77.4% 수준이다. 탈북민의 고용률은 58.2%로 국민 고용률(61.4%)보다 낮았다. 직업군으로는 단순노무와 서비스직 종사자가 전체의 44%에 달했다. 브로커에게 탈북 비용을 내야 하는 여성들이 유흥업소로 내몰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지속되면 마음이 동요하기 쉽다. 한국에 환상을 갖고 왔지만 여기서도 경제적으로 최하층을 벗어나지 못하자 “차라리 북한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살고 싶다”고 말하는 탈북민들도 있다. 임 씨는 “김정은이 집권한 뒤 재입북자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김 씨가 재입북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신변보호담당관 제 역할 못 해”
가족도 친구도 없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탈북민들에게 경찰 ‘신변보호담당관’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탈북민은 정착 초기 5년 동안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는다. 신변보호담당관은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관할 경찰서 소속 경찰이 맡는다. 탈북민이 정착에 어려움은 없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도록 돼 있다. 북한의 위협 등으로부터 탈북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 기능을 못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재입북한 김 씨는 정착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이었다. 하지만 담당 경찰관은 재입북 동향을 탐지하지 못했다. 김 씨가 월북하기 한 달 전 성폭행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후 별도로 접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담당 경찰관이 김 씨와 지속적으로 연락하면서 상황을 파악했다면 ‘탈북민 관리의 구멍’으로 재입북하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담당 경찰이 보호를 명분 삼아 여성 탈북민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탈북 여성 A 씨는 자신을 19개월 동안 12차례 성폭행했다며 신변보호담당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탈북민들은 이런 사례가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북민들은 통제된 북한 사회에서 제복 입은 관료들을 두려워했다. 이 때문에 성폭행을 신고해도 손해라는 생각에 신고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또 신변보호 제도가 보호와 감시의 경계에 있기 때문에 담당 경찰이 밤늦게 만나자고 하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탈북민들은 전했다. 한 탈북 여성은 “아버지뻘 되는 경찰이 밥을 먹다가 몸을 더듬으려고 해 가까스로 피했다. 주변에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지성호 의원은 신변보호담당관의 성범죄 문제를 막기 위해 여성 탈북민 요청 시 여성 담당관을 우선 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 보호·정착지원법 개정안을 5일 발의했다.
○ 정착 돕는 ‘하나센터’는 인력 부족
탈북민들은 외로움, 심리적 불안감과도 싸운다. 특히 어린 나이에 혼자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 재입북한 김 씨도 평소 어머니가 그립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서울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탈북민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의 3배에 달한다. 10명 가운데 1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설송 씨는 “한국 사회에 대한 환상은 가득했지만 혼자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외로웠다. 사회의 왕따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한 씨의 손을 잡아준 건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하나센터’였다.
하나센터는 하나원을 출소한 탈북민의 정착을 돕기 위해 2010년부터 전국 각 지역에 생겼다. 지금은 25곳이 통일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휴대전화 개통, 카드 발급 같은 일상적인 문제부터 진로·직업 상담까지 제공한다. 이혜주 씨도 “탈북민들에게 필요한 건 강의실 교육보다 공감해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며 “하나센터 직원들이 미래를 진심으로 함께 고민해줘 고마웠다”고 했다.
탈북민들은 하나센터와 연계한 심리 상담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탈북민들은 주변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이 씨는 “하나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적극적으로 해주면 초기 정착 때의 불안감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 부족이다. 하나센터 사회복지사들은 1명당 많게는 300명에 가까운 탈북민을 관리한다. 심리상담사는 센터마다 1, 2명에 불과하다. 경기북부하나센터 유순애 사무국장은 “업무가 과중하고 박봉이다 보니 근속 기간이 짧다. 복지사가 자꾸 바뀌면 탈북민들이 마음을 터놓기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 “다가가고 맞아주는 한국 사회로”
“진짜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임은희 씨)
‘정착의 골든타임’을 보낸 탈북민들은 다른 탈북민들에게 “한국 사회에 먼저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새로운 사회에 왔으니 모르면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 구하는 걸 어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 또 기초수급자에 머물지 말고 자신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탈북민 정착·관리 제도를 개선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준다면 ‘한국이 힘들어서’ 떠나는 재입북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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