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도 기록적인 폭우에 이어 태풍까지 한반도로 북상 중이라고 한다. 장마가 시작된 지 47일째인 어제까지, 전국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42명, 실종자는 15명에 이른다. 주말에는 섬진강 범람으로 구례 남원에서 이재민 수천 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고 동서 화합의 상징 화개장터가 32년 만에 물에 잠겼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비를 동반한 5호 태풍 ‘장미’가 오늘부터 남부지방을 덮친다.
천재지변이라 할 정도로 역대급인 이상기후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지만, 그 대처과정에서 판단을 그르쳐 소중한 인명을 잃거나 안이하게 같은 피해가 되풀이된다면 이는 인재(人災)라 하지 않을 수 없다. 6일 강원 춘천 의암댐에서 인공수초섬을 지키려다 경찰순찰정 등 3척이 전복돼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실종된 사건이 이런 사례였다.
댐 수문이 개방돼 거센 물살에 휩쓸릴 위험이 높은데도 신참과 기간제 근로자들만이 투입돼 폭우 속에서 작업을 강행했다. 이틀 뒤 시신으로 발견된 실종자가 살기 위해 사투한 흔적인 듯 굵은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쥐고 있었다는 소식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춘천시는 무리한 작업의 책임을 실종된 말단 주무관에게 넘기려는 태도를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유사한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작업 지시를 한 책임자와 경위, 판단 근거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폭우 때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땜질식 처방에 그친 점도 ‘예고된 인재’를 양산했다. 가령 저지대인 서울 강남역 일대는 2010년 이후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침수가 반복됐지만 지난 1일에도 물에 잠겼다. 지난달 23일 부산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시민 3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도 지자체의 늑장 안내에 더해 지하차도 내 배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됐다. 재난 상황에서는 순간의 판단이 큰 참사를 낳을 수도,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재난 안전에 대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비해야 인재를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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