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입마개를 하지 않은 맹견 로트바일러가 산책 중이던 소형 스피츠를 물어 죽인 사고가 발생했다. 스피츠 주인과 행인이 맹견을 떼어놓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썼지만 당할 수가 없었는데, 스피츠가 숨지는 데는 1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죽은 강아지와 주인은 11년간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 맹견은 3년 전에도 다른 개를 물어 죽였지만 견주는 여전히 입마개는 물론이고 목줄도 잡지 않은 채 주택가에 풀어놨다. 그는 개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 그랬다고 했는데 피해자에게는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고 개는 훈련소에 보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것도 분통이 터지는데 더 기가 막힌 건 재물손괴 외에는 대응할 방법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동물을 소유물, 즉 물건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강아지 인형을 훼손하는 것과 산 강아지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동일한 셈이다. 그나마도 가해 동물 주인이 이를 유도하거나 방치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적용이 쉽지 않다고 한다.
▷지난해 경기 이천에서는 기르던 개를 동네 다른 개가 죽였지만 법정까지 가서야 구입비 80만 원과 위자료 80만 원만 받고 끝났다. 애견학교처럼 다수의 개를 맡아주는 곳에서는 아예 ‘사망 시 동종의 강아지로 줄 수 있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넣은 곳도 있다.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자기가 기르던 동물을 망치로 때려죽여도 처벌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민법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람과 물건 사이의 제3의 지위를 부여해 감정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적어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 동물에 대한 올바른 인식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라고 한다. 독일은 연방헌법에도 ‘국가는 동물을 보호한다’고 규정했다.
▷가족같이 소중한 반려동물이 죽은 뒤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펫로스(Pet loss) 증후군이라 부른다.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질병 사고 등 죽음의 원인에 대한 분노, 슬픔으로 인한 우울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데 심하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가족을 잃었을 때에 버금가는 고통을 느끼기도 하는데, 자신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일 경우에는 특히 증상이 더 심하다고 한다.
▷삶의 의미를 주는 대상이 꼭 사람만은 아니다. 반려(伴侶)동물이란 말이 정착된 지 오래다. 반려자(伴侶者) 외에 이 말을 쓰는 대상이 또 있을까.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반려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인식도, 법적 지위도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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