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아이를 둔 한 엄마가 공부를 시킬 때마다 싸우게 된다고 했다. 엄마는 영어교재나 책도 직접 만들어 가르칠 만큼 아이를 열심히 키웠던 사람이다. 아이는 유치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잘 따라왔는데 초등학교를 들어가자 공부를 시킬 때마다 짜증을 심하게 낸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서적인 상호작용에는 늘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부모는 잘 키우려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충전이 되어 있는 강한 에너지다. 방향이 조금만 틀어지면 받는 사람은 무척 부담스럽다. 그러면 그 강한 에너지에 반응하는 아이의 반작용도 세지게 된다. 어릴 때는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알고, 칭찬받는 것도 좋으니까 대부분 따라간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과하면 아이도 힘이 든다. 아이가 못하면 열심히 한 부모일수록 좌절과 속상함도 크다. 그런 마음이 아이에게 또 강한 정서적 자극으로 전해진다.
부모들은 너무나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기 때문에 화를 내거나 좀 쥐어박아도 아이가 이해해줄 거라고 쉽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부모와 아이 관계는 악화되고 만다. 보통 초등학교 3, 4학년 때 공부의 ‘공’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는 아이들이 나타난다. 어릴 때부터 강한 에너지와 정서적 자극을 꾸준히 받아왔기 때문이다. 사랑도 적당해야 한다. 아이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사랑도 받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으면 숨이 막힌다.
어떤 부모는 별로 열심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공부를 너무 싫어한다고도 한다. 이럴 때 아이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엄마와 말이 안 통해요” 혹은 “아빠가 나를 무시해요”. 말을 안 들어주고, 무시하니 같이 있는 시간이 괴롭다는 것이다. 내 말은 무조건 틀렸다고 하고 무시하는 사람한테 뭘 배워야 한다면, 정말 괴로울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생각보다 아이의 말을 많이 틀렸다고 한다. 가장 흔한 예가 음식 맛이다. 부모 입에는 확실히 짠데, 아이가 맛있다고 하면 “넌 그게 입이니?”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모는 자신의 입맛이 훨씬 정확해서 아이에게 올바른 답을 가르쳐준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는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내가 옳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이럴 때는 “네 입맛에는 맞니? 아빠는 좀 짠 것 같거든” 정도로 말해줘야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부모로부터 지도를 받는 게 싫어지며 학습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이런 태도를 고쳐야 한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아이의 말에 수긍해 주는 것이다. 수긍이란 ‘네 말이 옳다’가 아니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이다. 수긍을 할 때는 그 자리에서 설득을 하고 승복을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은 수긍을 하고 나서 금세 설득하고 승복을 받는 것을 한꺼번에 하려고 한다. 수긍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그날은 아이의 주장만 들어본다. 그날은 “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정도로 끝내야 한다.
그렇다면 공부하기 싫다는 아이를 어떻게 수긍해줘야 할까? 보통 아이가 “나는 공부가 하기 싫다고요. 놀고 싶어요”라고 얘기하면, “언제 내가 놀지 말랬어?”라고 말한다. 아이는 지금 자기가 해야 하는 분량도 하기 싫다는 이야기다. 이때의 수긍은 ‘네가 지금 공부가 참 힘들구나. 하기 싫은 마음이 많구나’이다. 아이의 상태를 인정해줘야 그다음 이야기가 가능하다. “네가 정말 공부가 하기 싫구나. 왜 그럴까?”라고 물어볼 수 있다. 아이가 “엄마가 너무 많이 시키고…”라고 하면 “엄마가 많이 시키는 것 같니? 어느 정도면 많이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라며 대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아이가 “엄마는 공부할 때마다 혼만 내고…” 하면 “엄마가 혼을 안 내면 좀 괜찮을 것 같아?”라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이가 공부가 하기 싫다고 할 때도 ‘공부는 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아이를 이해한다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설명까지 전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눈치를 보니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안 된 것 같으면 “큰일이네. 공부는 해야 하는데…. 힘들어하니까 걱정이다” 정도만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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