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조국과 서울대의 비양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2일 03시 00분


조국 박사논문 표절 여부, 7년 전 조사 거부했던 서울대
이번엔 연구부정행위로 결론… 단, 부정사례 카운트하지 않고
대충 경미한 위반으로 빠져나와, 박정훈 위원장 바꿔 재심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조국 로스쿨 교수의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박사학위 논문에 대해 ‘연구부정행위’가 있었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러면서도 ‘위반의 정도는 경미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논평을 잠시 망설인 이유는 조 씨가 언론 보도에 잇달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혁명 수준으로 진행되는 형사사법 체계의 파괴, 수습 불가 상태로 가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실패 같은 큰 현안을 놔두고 곁가지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럼에도 조 씨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해온 사람 중 하나로서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위원회 결정은 2013년 결정보다는 진전된 것이다. 당시 이준구 경제학과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제보 내용이 진실하지 않다”며 보지도 않고 기각해버렸다. 조 씨의 연구부정행위를 알아내기 위해 거창한 조사까지 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연구부정행위를 인정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 조국 사태가 없었다면 이마저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울대 연구윤리지침은 표절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연구부적절행위와 연구부정행위라는 말을 사용한다. 연구부적절행위는 ‘연구상 중대하지 않은 과실’을, 연구부정행위는 ‘고의나 연구상 중대한 과실’을 의미한다고 돼 있다. 조 씨의 표절은 연구부정행위인데도 경미하다는 것이다. 요령부득이다.

위원회는 조 씨의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은 127군데에서 인용표시 없는 인용이 있었다고 밝혔으나 박사학위 논문은 몇 군데서 그런 인용이 있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건성으로 조사했음이 드러난다. 조 씨 논문에는 마이클 잰더라는 학자의 글이 10군데나 인용표시 없이 인용돼 있는데 이런 사례들이 통째로 빠졌다. 부정행위가 인정된 7편의 논문에 대해서도 인용표시 없는 인용이 몇 군데씩 누락돼 있다.

위원회는 연구부정행위가 대부분 타인 저술이나 외국 판례의 요약정리와 관련돼 있으며 연구의 주요 결과에 미치는 정도가 미미하다고 봤다. 위원회는 인문·사회과학 논문에서 독자적인 요약정리의 중요성과 조 씨의 요약정리 차용이 지닌 비양심적 맥락에 눈을 감았다.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의 책은 영어로 쓰여 있지만 단어는 평이해도 그가 쓰는 특유한 의미가 있어 해독이 어려운 영어다. 그래서 벤담은 벤담 전공자가 아닌 한 벤담 전공자가 요약정리한 책으로 읽고 인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도 굳이 벤담을 직접 읽고 인용한 것처럼 쓴 것은 비영어권 박사과정 학생이 영어로의 요약정리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벤담에 대한 기초적인 감조차 잡지 못한 상태에서 거짓을 시도한 것이다.

조 씨는 논문에서 독일어 논문을 12편 인용하는데 9편이 페이지 수 표시 없이 통째로 인용돼 있다. 그는 영어 논문을 인용할 때는 빠짐없이 페이지 수를 써준다. 독일어 논문을 실제 읽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자체가 인용표시 없는 인용을 넘어서는 심각한 부정행위다. 그의 논문 속에 어처구니없는 독일어 표기 실수가 너무나 많은 것은 독일어를 읽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실력으로 독일어 판례는 당연히 읽지 못했을 것이며 그러니 다른 학자가 영어로 정리해놓은 요약을 자신이 직접 독일어 판례를 읽은 것처럼 갖다 쓴 것이다.

이런 논문이 어떻게 미국에서도 일류로 통하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서 취재해봤더니 조 씨의 지도교수이자 박사학위 논문 심사위원장이 필립 존슨 교수였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에는 그가 지적 디자인(Intellectual Design) 운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사이비과학을 추구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쓰여 있다. 로스쿨 교수가 관심이 딴 데 가 있는 정도를 넘어 학문적 사이비로 빠졌던 것이다.

조 씨는 지난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끝내자마자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리라는 예상 속에서도 서울대에 복직 신청을 했다. 서울대 법학 교수는 장관 자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학자적 양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은 박정훈 서울대 로스쿨 교수였다. 그는 현 정부에서 경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재심 청구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에 위원장을 바꿔 재심할 것을 권한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조국#서울대#비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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