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의 2인자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81) 간사장은 2008년 4월 한국의 18대 총선 직후 고향 와카야마의 한 매체에 한국 정치인에 관한 글을 실었다. “나는 밤늦게까지 한국 선거 결과를 기다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친구의 당선을 고대했다.”
이 친구가 바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78)이다. 박 원장은 당시 전남 목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둘은 1999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장관 회의에서 처음 만나 21년간 인연을 이어왔다. 당시 각각 문화관광 분야 장관이었던 둘은 만나자마자 마음이 통했다. ‘노회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무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고 있는 것도 유사했다.
세 살 차이인 두 사람은 ‘의형제’ 연을 맺고 이후에도 긴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한일 양국 역시 한국의 일본 문화 개방, 2002년 한일 월드컵 등을 계기로 협력했다. 양국 장관 회의도 일본 오사카, 센다이 등에서 계속 열렸다.
박 원장은 2003년 6월 대북 송금 사건으로 수감됐다. 니카이 간사장은 2008년 기고문에서 “수감 이유를 알고 싶지 않다. 그가 갑작스러운 생활환경 변화로 건강이 상하지 않도록 매일 기도할 뿐”이라고 밝혔다. 실제 감옥에 있는 박 원장에게 “당신이 한일 양국을 잇는 역할을 하는 날이 다시 온다”는 편지도 두세 차례 보냈다. 2007년 2월 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된 박 원장이 일본을 찾았다. 니카이 간사장은 아무런 직책 없는 ‘일반인 박지원’을 유명 온천으로 초대했다.
둘은 아직도 끈끈한 사이다. 2018년 박 원장이 배우자를 떠나보내자 니카이 간사장은 아들을 한국으로 보내 조문했다. 지난해 니카이 간사장이 부인을 여의자 박 원장이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영결식에 참석했다.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이 양측의 조문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지난해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극한 갈등을 빚을 때 내로라하는 한국 국회의원이 잇달아 일본을 방문했다. 하지만 니카이 간사장 등 일본 고위 인사를 만난 사람은 드물었다. 박 원장은 지난해 8월 오사카에서 니카이 간사장과 5시간 반 동안 비공개 회동을 하며 징용 문제를 협의했다.
지난달 박 원장이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되자 한일 언론은 모두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인사’라고만 분석했다. 기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남북 관계는 물론이거니와 사상 최악인 한일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인사라고 본다.
박 원장과 니카이 간사장이 서로의 직접적인 카운터파트는 아니다. 하지만 상대 국가를 방문할 때 일부러 시간을 내 꼭 만나는 ‘의형제’다. 더구나 현재 둘 다 양국 최고 권력자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다.
일본 외교가에는 ‘가부키(歌舞伎·일본 전통연극)’라는 은어가 있다. 말 그대로 알맹이 있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 여론을 의식해 일만 하는 ‘연극’을 벌인다는 의미다. 일본 고위 인사는 “한국 외교부와 일본 외무성이 관계 개선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아직은 가부키에 불과하다. 두 나라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실세가 움직여야 문제가 풀린다”고 귀띔했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대화하는 박지원-니카이 라인에 양국 관계 개선의 기대를 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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