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장마, 이중고 겪는 건설근로자[현장에서/송혜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3일 03시 00분


12일 서울 중구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생활안정자금 대부를 신청하러 온 건설근로자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제공
12일 서울 중구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생활안정자금 대부를 신청하러 온 건설근로자들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제공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11일 오후 2시 반 서울 중구 건설근로자공제회. 투박한 작업화를 신은 김진현(가명·54) 씨가 민원창구를 찾았다. 손에는 ‘건설근로자 긴급 생활안정자금 대부’ 신청서가 들려 있었다.

앞서 김 씨는 이날 오전 5시 건설현장에 출근했다. 비 소식이 있었지만 날이 개면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궂은 날씨로 인해 결국 작업이 취소됐다. 김 씨와 동료들은 빈손으로 현장을 떠나야 했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긴 장마 때문에 지난달에 단 5일만 일했다. 수입의 3분의 1 이상이 줄었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10년 동안 건설 일을 했지만 이렇게 오래 쉰 적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업종에서 고용 위기가 닥치고 있다. 여기에 역대 최장기간 장마의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건설근로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12일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 수는 올 2월부터 지난달까지 여섯 달 연속 감소세다. 건설현장 자체가 멈춘 건 아니다. 올 1분기 건설투자는 1.5% 늘었다. 현장은 가동하는데 취업자가 줄어드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사람을 많이 안 쓴 탓”이라고 분석했다.

건설업은 실직자, 폐업 자영업자가 찾는 ‘마지막 보루’다. 그래서 다른 업종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건설현장에서조차 일을 구하지 못하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셈이다. 올 5월 운영하던 식당 문을 닫은 이모 씨(46)도 그중 한 명이다. 폐업 후 당장 생계를 위해 건설현장을 찾았지만 최근 2주간 일감이 하나도 없었다. 이 씨는 “안 그래도 일감이 줄었는데 나처럼 장사를 망친 사람들까지 건설현장에 몰려 경쟁이 심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이달 14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 중인 ‘건설근로자 긴급 생활안정자금 대부 사업’ 신청 기간을 한 달 연장하기로 했다. 이는 퇴직공제 적립일수 및 적립원금 요건을 충족한 건설근로자에게 최대 200만 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사업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4월부터 시행했는데, 이달 9일까지 총 5만7000명의 근로자가 약 733억 원을 빌려갔다.

근본적으로는 건설근로자도 고용 안정을 위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부 지원은 제조업 상용직을 기준으로 설계돼 건설일용직의 경우 적용이 어렵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많다. 본인 몫의 퇴직공제금을 앞당겨 빌리는 생활비 대부만으로 건설근로자들의 생계 불안정을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 건설 일자리는 취약계층이 기댈 수 있는 일자리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송혜미 정책사회부 기자 1am@donga.com
#건설근로자#이중고#코로나19#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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