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를 아시나요[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36〉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4일 03시 00분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해상법 수업을 시작하기 전 “오늘은 도선사에 대한 공부를 합니다. 주의할 것은 도선사(導船士)는 서울에 있는 사찰 이름인 ‘도선사(道詵寺)’가 아니라는 점입니다”라고 유머를 던지면 학생들이 모두 웃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선장들이 항구에 들어오고 나갈 때 항구의 사정을 잘 모릅니다. 선박을 안전하게 몰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전문가가 바로 도선사입니다”라고.

대학에서 항해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의 사법시험인 도선사시험, 이 시험에 합격하기 위하여 도서관에서 혹은 절에서 2년을 보내는 것이 보통이다. 평균 합격 연령이 50세인 시험. 선박회사 선원 담당자는 도선사시험 6개월 전쯤인 2월경 업무상 바빠진다. 대부분의 경력 있는 선장들이 하선하여 도선사시험에 응시하기 때문에 선원 담당자는 교대자를 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선사는 항해사와 선장들의 평생 꿈이다. 가족과 떨어져 선상생활을 하던 선장들이 도선사가 되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각 항구에서 일할 수 있으니 좋다. 그리고 높은 수입이 보장된다. 통상 30대를 넘긴 젊은 항해사들은 선장으로 진급해 승선하면서부터 도선사시험을 준비한다. 선장으로서 승선 경력이 5년 이상이 돼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는다. 최근 승선 경력의 하한이 3년으로 변경돼 항해사들 사이에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내가 만난 도선사 중 인상 갚은 도선사 두 분이 있다. 첫 번째 선박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반복해서 기항했다. 영국 도선사가 배에 올라와 도선을 했다. 키도 크고 미남에 도선도 아주 멋지게 했다. 그 큰 선박을 무리 없이 부두에 잘 붙이고 매너도 좋았다. 무엇보다 칭찬을 잘했다. 내가 한창 영어를 배울 때 방송에서 익힌 제법 고급인 영어 단어를 쓰면 그가 “어디서 그런 고급 영어를 배웠느냐” 하면서 나를 예뻐해 주고 선장에게 3항사가 아주 우수하다고 말해 주었다.

한번은 선박이 한국에서 미국 동부로 항해하며 파나마운하를 통과해야 했다. 당시 선장님이 파나마운하에서 도선사로 근무 중인 자신의 동기생이 올라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놀랍게도 그 선배 도선사님이 정말 우리 배에 올라와서 도선을 하셨다. 당시 파나마운하는 미국이 운영하던 곳이었다. 그 선배님은 한국에서 선장을 하시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뒤 미국선장 자격을 취득하고 그 어려운 파나마 도선사시험에 선발된 것이다. 이때가 1985년경이다. 한국 선장이 파나마운하 도선사가 되어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전 세계 선박의 도선을 해준다니, 세계로 뻗어나간 선배 해운인이 계시다니! 그는 당시 우리 젊은 해기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바다의 전설로 회자되었다.

나도 도선사를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고향에서 가까운 곳이 큰 항구라서 도선사들이 있다. 그래서 선장 경력 5년을 쌓은 뒤 도선사시험을 통과해 도선사가 되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고향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렇지만 중도에 하선해 학문의 길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그 좋은 도선사를 하지 않았느냐”고. 나는 답한다. “비록 도선사는 아니지만 도선사시험 출제위원을 하면서 수십 명의 선장을 도선사로 배출했으니 도선사보다 나은 것 아니냐”고. 나는 이렇게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아쉬움을 달래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300명 남짓한 우리 도선사들의 안전 도선과 해외 진출도 기대한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해상법#도선사#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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