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우리’는 안녕하신가[오늘과 내일/고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7일 03시 00분


세금만 잘 걷히면 괜찮다는 ‘우리’… ‘우리 편’ 아닌 당신은 계속 ‘우리’일까

고기정 경제부장
고기정 경제부장
친여 비례정당인 열린민주당 김진애 의원이 이달 초 국회에서 부동산 3법 찬성토론자로 나와 했던 말 중 내 귀에 박힌 건 ‘우리’였다. “부동산 값이 올라도 우리는 문제없다. 다만 세금만 열심히 내라.” 조세의 부과와 용처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공간인 의회에서 국민의 대표가 납세자의 역할을 ‘우리’를 위해 세금 열심히 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민주주의의 역사가 거꾸로 갔다.

세금은 본래 위력을 수반한 계급성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대헌장은 왕의 자의적 과세를 금지하자는 데서 출발했고, 미국 독립전쟁은 ‘(납세자) 대표에 의한 과세 원칙’을 확립했으며, 프랑스 대혁명은 가혹하게 털이 뽑힌 거위들이 봉기함으로써 앙시앵레짐(구체제)을 전복시켰다. 민주주의가 조세 저항의 역사라고 하는 이유는 이처럼 세금을 걷는 자와 내는 자 간의 투쟁의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시민사회 성립 이후부터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법률을 통해 조세를 결정함과 동시에 세금을 징수하는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대리하고 있다. 김 의원의 말이 참담했던 건 이런 역사의 결과물인 의회에서 국가권력을 감시하는 게 아니라 세금 내는 사람들을 ‘우리’와 ‘너희’로 갈라 과세를 강제하는 일이 조세정의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어서다.

이번 보유세 인상으로 그동안 여권의 우군이라 불렸던 서울 강남 거주 진보 세력, 이른바 ‘강남 좌파’도 졸지에 세금만 열심히 내면 되는 사람들이 됐다. 무리해서라도 수도권에 집 한 채 사놓으려 애쓰던 지방의 30, 40대 1주택자도 벌금이나 다름없는 취득세 중과 대상이자 보유세 열심히 내야 하는 부류에 속하게 됐다. 적어도 김 의원 논리에 따르면 이들은 애초에 ‘우리’가 아니었거나 사정이 바뀌자 ‘우리’에서 제외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회와 정부가 세제를 거칠고 정치적으로 다루면서 내가 양도세 감면 대상인지, 부부 공동명의 1주택자는 다른 집을 살 때 취득세를 어떻게 계산하는지, 곳곳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식의 조세라면 김 의원의 ‘우리’에 속한다고 믿는 당신 역시 언제라도 ‘너희’가 될 수 있다.

조세정의는 대개 조세공평주의와 이어지는 개념이다. 조세공평주의는 조세법률주의와 함께 세법 전체를 관통하는 양대 원칙이다. 납세자의 부담 능력에 맞게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응능부담의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조세가 빈부 격차를 극복하고 배분적 평등을 실현하는 수단이긴 하지만 응능부담의 원칙을 위배한 세제는 불합리한 차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위헌적이다. 이 역시 과거로부터의 학습과 교훈에서 얻은 원칙이다.

부유세 성격을 띠고 있는 종합부동산세가 갖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조세형평이나 정책 수단으로서의 세금의 역할에 국민이 동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보유세가 급격하고 광범위하게 상승하면 납세자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더 따져보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선행됐어야 한다. 보유세 인상이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부터 혹여 세입자에게 전가되지는 않을지까지 살피는 게 국민의 대의기관이 할 일이다. 이건 보유세 인상이 정의로운지 또는 진보적인지와 상관없다. 조세는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세금을 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사라진다.

더디더라도 함께 가는 게 민주주의라고 현 집권세력이 말했었다. 이를 생략한 채 의회의 다수가 조세권을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제도적 수단으로 전용하게 되면 조세정의는 설 곳이 없어진다.

고기정 경제부장 koh@donga.com
#세금#부동산3법#보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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