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치솟으면서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9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최근 9억 원 이상 고가주택 매매에 대해 의심되는 거래를 상시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서울 아파트 절반을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겠냐”는 냉소적 반응이 나온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주택’ 기준은 12년째 ‘시가 9억 원’으로 요지부동이어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현 소득세법 시행령은 ‘시가 9억 원’을 고가주택의 기준으로 정해 놓고 있다. 2008년 ‘시가 6억 원’에서 50% 인상된 후 그대로다. 12년 사이 4억8044만 원이던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올해 7월 9억2787만 원으로 두 배가 됐다. 서울 아파트 주민의 절반이 ‘고가주택’에 살게 된 것이다.
이 기준을 기초로 한 주택연금 제도부터 문제가 많다. 자기 집에 살면서 집을 담보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이 제도를 이용하고 싶어 하는 은퇴자들이 많지만 고가주택은 대상이 아니어서 9억 원 이상 아파트 거주자는 가입할 수 없다.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즉 시가 13억 원 정도로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10월 내놓을 예정인 재산세 인하 방안의 대상도 시가 9억 원 이하 또는 그보다 몇억 원 낮은 수준에서 갈릴 공산이 크다. ‘중저가 주택’을 보유한 1주택 실수요자의 세금부담을 깎아준다는 취지여서 시가 9억 원 초과 고가주택 보유자는 대상에서 빠지는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시가가 아닌 ‘공시가격 9억 원 이하’ 주택 보유자의 재산세를 절반으로 깎아주는 방안을 자체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집값 급등이나 지역별 가격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오래전 만든 기준에 따라 혜택이나 불이익을 주는 건 불합리하다. 정부는 재산세 인하 방안을 내놓기 전에 현실과 동떨어진 고가주택 기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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