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백과 망고빙수… 그들이 ‘오픈런’하는 이유[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8일 03시 00분


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지난달 말까지 진행한 스타벅스의 사은품 행사는 이번에도 뜨거웠다. 스타벅스는 올여름 단골고객을 위한 사은품으로 조그만 여행가방인 레디백과 캠핑의자를 제공했다. 17잔 마셔야 받을 수 있는데 이걸 충족하려면 대략 6만 원이 넘는다. 스타벅스는 2018년부터 사은품을 매트, 타월 등으로 바꾸며 굿즈(사은품)가 본품(커피)보다 더 인기가 많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고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거래되기도 하고 매장에는 일찌감치 사은품 재고가 떨어져 새벽부터 ‘오픈런’을 해야 얻을까 말까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상품을 얻으려 매장으로 뛰어가는 ‘오픈런’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올 5월, 가격 인상을 앞둔 샤넬 백을 사기 위해 매장 문으로 달려가던 오픈런 행렬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런데 요즘 출근길에도 백화점 문이 열리기도 전에 명품관 앞에 길게 서있는 줄을 자주 볼 수 있다. 며칠 전 샤넬 매장에 특정 모델의 신제품이 입고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새벽부터 백화점 앞에는 어김없이 긴 줄이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다. 신라호텔에서 여름마다 판매되는 제주산 애플망고빙수도 두 시간씩 대기해야 먹을 수 있다. 올해 5만9000원으로 지난해(5만4000원)보다 가격을 올렸는데도 평일만 판매되다 보니 대기가 더 치열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곳이 많은 가운데 어떤 곳은 비정상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뉴노멀 양극화 소비다.

조그만 여행가방을 얻으려고, 5만9000원짜리 빙수를 먹으려고, 새로 입고된 명품백을 사기 위해 비용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매장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는 뭘까.

얼마 전 만난 모 대기업 A 팀장은 레디백을 얻기 위해 스타벅스 매장이 문을 열기 전 오전 6시부터 줄을 섰다고 털어놨다. 외국에 살고 있는 아내와 아들이 너무도 원하는 레디백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는 두 차례 새벽에 일어나 매장 앞에 줄을 서서 레디백을 얻을 수 있었다. 레디백을 들고 다시 외국으로 출국하는 아내와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가장으로서 무언가를 해낸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A 팀장은 사람들이 레디백을 원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레디백을 구하는 건 솔직히 쉽잖아요. 요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커피 17잔 사서 아침 일찍 매장 앞에 기다리는 거요? 하나도 힘들지 않습니다.”

신라호텔 관계자의 설명도 비슷했다. 고가의 망고빙수를 호텔까지 먹으러 오는 이유는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라기보다 하루 숙박비가 수십만 원이 넘는 특급호텔에 묵을 여유가 없으니 택하게 되는 일종의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호텔 숙박비쯤은 여유 있게 쓸 수 있는 부자가 되긴 글렀으니 당장 5만9000원짜리 망고빙수로 확실한 행복을 보장받겠다는 실리적 선택이다.

부동산 가격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하고 있으며, 구직자들은 좁아진 취업문에 좌절하는 요즘이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수 없는 것에 비용과 수고를 들이는 것보다 당장의 확실한 만족이 보장된다면 새벽부터 매장으로 달려가도 아깝지 않은 게 요즘 소비자들이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스타벅스#레디백#망고빙수#오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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